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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with ... 인물

나타샤 캄푸쉬, 8년간의 납치와 감금, 영화 3096일 (2013)

by story-opener 2020. 12. 8.

 

 

“나는 나타샤 캄푸쉬. 8년전 납치당했습니다”

 

1998년3월2일, 열살 나타샤 캄푸쉬는 등교길에 납치당한다. 지하의 1.5평 작은방에 갇힌 나타샤.

범인은 그녀에게 “복종”만을 강요하고, 상습적인 구타와 폭언, 굶김으로 그녀를 사육하기 시작한다.

그가 누구인지, 왜 납치했는지 이유를 모른 채, 기아와 학대를 견디지 못하고 점점 그의 완전한 소유물이 되어가는 나탸샤.

8년뒤 어느 날 범인이 잠시 방심한 사이 탈출을 시도한다.

 

 

실제 납치 됐던 나타샤 캄푸쉬 와 납치범

 

 

 

실화를 바탕으로 하는 이 이야기는 이미 22년 전에 벌어진 일이었다.

하지만 22년이 지난 후에도 회자되는 이유는 그녀의 기록때문이다.

 

 

그녀의 탈출은 지치지 않고 시도되지만 8년 동안 끊임없이 실패하고 또 실패한다.

그러나 그녀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벗어나기 위해 탈출을 시도한다.

 

그 시도가 납치된지 8년만에 성공한 것이다.

 

 

이 영화는 그녀가 받은 학대와 인권유린에 대한 폭로성을 넘어

8년간 이어진 그녀의 끈질긴 탈출시도 과정이 더 선명하게 와닿는다.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던 핵심적인 이유 4가지.

 

 

1. 학교놀이

앞에 가상의 두 학생을 두고 자신이 선생이 되어 수업 중이다.

 

그녀는 이때 책가방 속에 들어있던 책을 8년 내내 외울정도로 익힌다.

그과정은 결국 그녀가 이곳에 처음 오게 된 그 순간을 각인하는 계기가 됐을지도 모른다.

 

 

 

 

2. 그림그리기

없는 문고리를 그리고 문을 여는 행동을 하며 밖으로 나가는 상상을 한다.

 

 

 

3. 인터뷰 연습

 

자신이 탈출한 후 언론과의 인터뷰를 연습한다.

 

자신이 어떻게 납치되었고, 심정은 어떠하며 그 안에서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아주 구체적인 질문들을 구사하며 스스로 답변한다.

이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자신이 왜 탈출해야 하는지 인식하고 각인하게 된 것 같다.

 

 

 

 

4. 일기쓰기

 

납치되어 본인에게 벌어진 일들을 꼼꼼하게 기록한다.

 

이것 역시 자신이 이곳을 벗어나야 하는 이유들로 가득하다.

 

 

 


 

여자를 자유롭게 만드는 건 결국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것에 있다.

정체성은 문자를 통해 끊임없이 만들어가고 세워가야 한다.

 

 

 

납치범은 그녀에게 책을 선물하지만

그녀는 라디오와 두루마리 휴지를 더욱 소중히 여긴다.

 

 

라디오는 유일하게 바깥세상과 연결되는 통로이며,

두루마리 휴지는 자신의 일기장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라디오에서 자신의 납치사건의 뉴스로 방송되는 걸 듣고 더욱 탈출에 집중하게 된다.

 

 

 

 

책이라는 존재가 인간의 정체성을 확립시키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영화 속에서 그녀는 납치범이 주는 책을 좋아하는 척 시늉만 낼 뿐 진심은 라디오와 두루마리 휴지에 있다.

 

아무 걸름없이 외부에서 들어오는 일방적인 책은 개인을 위험하게 만든다.

범인이 준 책들은 문학시를 표방하고 있지만 내용은 남자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을 표현하는 감성적인 책들이다.

하긴 10살 어린아이가 배우는 내용이었으니 그리 깊이있는 내용을 담고 있진 않았을 건 자명한 사실.

 

결국 글자라고는 광고전단지에 적혀있는 글귀들이나 읽을 뿐 책을 읽지 않는 납치범이 어떻게 그녀에게 책을 선물할 수 있었을까?

 

이유는 간단했던 것 같다. 그녀가 처음 이곳에 끌려왔을 때 가방에 넣어왔던 바로 그 책의 작가가 쓴 또 다른 작품이었던 거다.

8년간 그녀는 그 책만 읽었으니 당연히 그 작가를 좋아한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다.

 

그녀를 납치해 오고서 할 줄 아는 건 배고픔을 무기로 무조건적인 복종 뿐이었으니 그녀가 보이는 행동으로만 그녀를 판단할 뿐이다.

 

 

 

 

 

8년은 짧은 시간이 아니다.

시간이라는 표현 보다 세월이라는 표현을 써야 할 정도로 그 공백은 그녀의 성장된 모습에서도 금새 드러난다.

그 말은 그녀도 8년이라는 공백 속에 어느 부분은 납치범이 익숙한 형태로 자리잡고 있었던 건 아닐까 하는 의문을 남긴다.

 

그녀가 자신의 비참한 모습에 집착하며 8년이 지났다면 어쩌면 그녀는 탈출을 포기하고 납치범의 곁에서 안주하게 되는 선택을 했을지도 모른다. 계속되는 실패와 점점 정체를 알 수 없는 모습으로 변해가는 자신을 직면했을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탈출을 시도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을지 되묻게 된다.

 

 

이런 의문을 갖게 되는 건 그녀가 마지막 탈출을 시도하기 직전에 또 한 번의 탈출기회가 있었지만 그녀는 두려움과 긴장감으로 꼼짝않고 서 있었던 순간이 있었다. 그 순간 그녀는 어쩌면 세상에 홀로 서 있다는 것을 온 몸으로 느꼈던 걸지도 모른다.

 

그렇게 세상에 혼자라는 현실을 직시하게 되면 누구든 되돌아가고싶어지는 충동을 느끼게 된다고 하는데,

아마 그녀도 그 순간 그런 충동을 느꼈던 걸지도 모르고 그 충동에 자신도 놀랐을지 모를 일이다.

 

하지만 범인이 경찰의 추격끝에 기찻길에서 자살했다는 소식을 들은 그녀는

오히려 경찰을 향해 살인자라고 소리지르며 울부짖었다고 한다.

 

 

그렇게 8년이라는 세월 동안 그녀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벗어나야 할 이유를 기록하며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작은 틈만 보이면 빠져나갈 기회를 포착하기 위해 연신 주변을 향해 눈알을 굴리기 바쁜 그녀는 이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다.

 

 

8년간의 이야기를 책으로 써낸 나타샤 캄푸쉬

 

 

 


 

 

여자의 본능은 남자의 본능보다 강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정신차리게 하는 건 다름 아닌 스스로 기록한 일기였다.

 

스스로 글을 익히며 문장을 작성하고 육체적 성장과 함께 정신적 성장을 위해 끊임없이 세상과 끈을 이어가려고 애쓰던 그녀에게 가장 큰 힘이 되었던 건 문자였다.

 

반면, 문자에 약하고 문자를 흘려읽는 납치범은 사회구조 속에서 가장 약한 존재임을 여실히 드러내는 존재다.

 

 

 

현실의 구조 안에서 가장 약하고 불쌍한 존재는 나타샤 캄푸쉬가 아닌 납치범이다.

결국 그는 약해빠진 정신력으로 자살을 기도하게 되고,

어린 여자아이를 납치하지 않으면 평생 여자라고는 만날 엄두도 내지 못할 남자였다.

 

자신의 세상에서 나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남자.

그러니 자신에게 필요한 여자를 그 지하 세상으로 데려가는 것 말고는 다른 선택이 불가능한 남자.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된다 하더라도 사람으로 살 수 없는 남자의 선택은 결국 또 다른 희생을 부르는 것 말고 다른 선택이 없어 보이지만 그런 납치범의 환경은 어디서 시작되는지 생각하게 된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공존하며 살고 있다고 믿게 하는 이 사회구조가 어떤 모습인지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의문을 갖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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