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야기/with ... 책

008. 근대화와 개발의 저 편에 살고 있는 사람들, 대한민국 원주민

by story-opener 2020. 12. 7.

 

 

 

 

"내게 원주민이란, 자신들의 과거와 삶의 방식이 자연스러운 형태로는 남아 있지 않는 사람들을 뜻한다.
(....) 살아있는 자가 자기 추억을 되새기기 위해 박물관에 가야 한다는 건,
좀 신기한 일이다."


시대는 겹쳐서 존재한다.


세상 보는 시선을 만드는 과정에서 결정적인 독서는 없었나?

초등학생 때 읽은 '빠빠라기'라는 책이 인상 깊었다. 인디언 추장의 눈으로 세상을 본 책이다.
그리고 초등학교 때까지는 공부나 운동을 웬만큼 잘해서 서열에 끼었는데 중학교 갔더니 키가 안 자랐다.
공부도 예습 복습이란 걸 모르니 따라가지 못했다.


보통 아이들은 공부하는 습관을 들이지 않나.
친구 집 가서 "놀자" 그러면 "지금 아이템플 하는 시간이야" 하더라.
그런 시간이 정해져 있다니! 우리 집은 자는 시간도 안 정해져 있는데!
상위급에 있다가 하층민이 되니까 세상이 보이기 시작하더라.


사람은 쉽게 변질된다.


- 기자의 최규석 인터뷰 중에서-

 

 



도시는 가난을 용서하지 않는 곳이었다.
나는 단 하루만에 내가 해오던 방식 전부를 거부당했고,
무엇보다 고작 일기장 한 권을 사려고
2백 원이나 달란 소리를 할
자신이 없었다.

 

- 본문 중에서 -

 


 

겉으로 드러나는 경우는 없지만 내 마음 깊숙한 곳에는,
도시에서 태어나 유치원이나 피아노 학원을 다녔고 초등학교 때 소풍을 엄마와 함께 가봤거나
생일파티란 걸 해본 사람들에 대한 피해의식, 분노, 경멸, 조소 등이 한데 뭉쳐진 자그마한 덩어리가 있다.


부모님이 종종 결혼을 재촉하는 요즘 이전에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어쩌면 존재하게 될지도 모를 내 자식을 상상하게 된다.

 

 


상상하다 보니 마음이 불편해졌다.
그 아이의 부모는 모두 대졸 이상의 학력을 가졌을 가능성이 크고
아버지는 화려하거나 부유하지 않아도 가끔 신문에 얼굴을 들이밀기도 하는 나름 예술가요
아버지의 친구라는 사람들 중에는 이름을 대면 알 만한 인사들이 섞여 있어
그 아이는 그들을 삼촌이라 부르며 따르기도 할 것이다.


엄마가 할머니라 놀림받지도 않을 것이고
친구들에게 제 부모나 집을 들킬까 봐 숨죽일 일도 없을 것이고
부모는 학교 선생님과 동등한 입장에서 대화를 할 것이며
어쩌면 그 교사는 제 아비의 만화를 인상 깊게 본 기억을 가진 사람일지도 모른다.


간혹 아버지를 선생님 혹은 작가님 드물게는 화백님이라 부르는
번듯하게 입은 사람들이 집으로 찾아들 것이고 이런저런 행사에 엄마 아빠 손을 잡고 참가하기도 하리라.
집에는 책도 있고 차도 있고 저만을 위한 방도 있으리라.


그리고 아버지는 어머니를 때리지도 않을 것이고
고함을 치지도 술에 절어 살지도 않을 것이고 피를 묻히고 돌아오는 일도 없어서
아이는 아버지의 귀가를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리라.

 

 


그 아이의 환경이 부러운 것도 아니요,
고통 없는 인생이 없다는 것을 몰라서 하는 소리도 아니다.


다만 그 아이가 제 환경을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제 것으로 여기는,
그것이 세상의 원래 모습이라 생각하는,
타인의 물리적 비참함에 눈물을 흘리 줄은 알아도 제 몸으로 느껴보지는 못한
해맑은 눈으로 지어 보일 그 웃음을 온전히 마주볼 자신이 없다는 얘기다.


- 작가의 자기 독백 -

 

 


 

 

 

 

선택한 가난이 아닌 태생의 절대 빈곤에서 살아간 자는
불가능한 것에 대한 욕망이 제거되고
어차피 가질 수 없다면 필요한 것도 불필요한 것으로 간주하는 사회적 욕구마저 제거된다.

더불어 본인은 선천적으로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욕구, 욕망이 없다는 착각에 빠지고
그런 자신을 현실적으로 합당하게 만들어 간다.


부모는 사회적 욕구가 제거된 자(포기가 빠른 자).

자신은 욕망이 제거된 자.


스스로 욕망을 절제하는 것과 욕망이 제거 된 건 다른 의미이다.
욕망이 제거 된 게 아니라 태생에 자신에겐 그런 욕망이 없다고 생각하는 건
조금 다른 문제인 것 같다.

 

욕망은 후천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욕망도 세포분열과 달라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세포분열의 에너지원이 욕망으로 보이는 건 왜일까?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