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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with ... 책

007. 영혼의 허기짐을 달래는, 고독한 미식가

by story-opener 2020. 11. 10.

 

 

 

 

 

 

 

 

 

 

1994년부터 1996년에 걸쳐 일본에서 연재되어 완결되었었다.

그러나 드라마의 방영 이후 웹에서 재발견되며 인기를 끌게 되고 2008년부터 2015년 9월까지 연재를 재개하였다.

국내에서도 인기를 끌며 정식 발매되었다.

 

 

낙천적이고 자유로운 성격의 무역업자 이노가시라 고로.
그는 자유로움을 추구하고자 삶을 무겁게 만드는 거추장스러운 것들의 속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매장도 운영하지 않고 결혼도 하지 않는 독신주의자로 등장한다.

 

그래서인가. 유달리 먹는 것에 있어서는 유별난 집착을 보인다.


마치 도쿄에서 보물찾기 놀이라도 하듯, 도쿄 곳곳에 숨어 있는 오래된 정겨운 맛집들을 찾아 헤매고,
원하는 음식을 먹고 나면 언제 고독했었냐는 듯 행복감을 느낀다.

 

그는 사치스럽고 값비싼 고급 레스토랑을 찾아다니거나,
소문난 식당 앞에서 차례를 기다리며 줄을 서는 바보짓을 하지 않는다.

 

 

그에게 미식이란

 

복잡하고, 요란하고, 희귀한 음식을 먹는 것이 아니라,

 

그 지역 사람들의 삶이 그대로 녹아 있는 평범하고 일상적인 음식을 먹고
그들에게 보편적인 것이 그에게는 독특한 것으로 남는,
그 깊고 오래된 맛을 기억에 새기고 그 기억을 더듬는 행위이다.

 

 

 


 

 

 

미식가

美食家 아름다운 밥을 먹는 것에 대한 전문가

 

혀끝으로만 먹는 밥이 아닌
머리로 먹는 밥에 대한 전문가

온몸으로 먹는 밥에 대한 전문가


밥의 범위가 식재료에 국한되지 않은 전문가


왜 먹어야 하는지, 먹지 말아야 하는지 고민하는 전문가

 

외로움을 넘어 고독의 미를 미식으로 수용하는 사람

고독의 미학을 미식으로 자유롭게 즐기는 사람

 

 

고독은 돈이 없어 외로운 사람이 어쩔 수 없이 혼자가 되는 것과 거리가 멀다.

고독은 가진자의 여유에서 존재한다.

절대 빈자의 삶에서 고독은 존재할 수 없다.

 

 

 

고독한 미식가 2

 

 

 

고독한 미식가 1

 

 

1991년 부동산의 붕괴 이후 과거의 일본으로 돌아가지 못한 지 30년이 다되어 간다.

 

이 작품이 연재되던 1994년에서 1996년은 꺼져가는 거품 속에 1997년까지 저성장을 벗어나지 못해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는 일본의 중산층들이 우울한 삶을 살고 있던 시기였다.

 

1990년대와 2000년대에 걸쳐 평생직장이 사라져 가고
청년실업 등의 여파로 니트족, 프리터족, 히키코모리 등이 많아지면서 실질 생활수준도 이보다 낮아진 상태가 된다.

 

 

이후 2010년대로 접어들면서 2012년 아베노믹스를 필두로 일본은 다시 회복되는 듯 보였지만

저출산과 고부채를 벗어나지 못하면서 일본의 내수는 인구 감소와 소득 정체로 인해 지금까지도 성장이 정체되어 있다.

 

그런 와중에 고독한 미식가는 중장년층을 비롯해 젊은층에게도 인기를 얻게 된 건 무너지는 중산층의 과거를 추억하게 만들고 혼자가 된다는 것에 익숙해진 일본 젊은 층들에게도 낯설지 않은 생활문화와 미래상을 보여주는 현상에서 비롯된 반응이라고도 보인다.

 


 

1편의 시작은 고독한 자들이 아닌 외로운 자들의 식당을 우연히 찾아들게 된 것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그는 언제나 자신과 다른 세계 사람들을 구분 짓는다.

솔직히 고독한 미식가는 자본주의가 충만할 때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생각된다.

 

경제성장률이 감소하고 유동성의 함정에 빠져드는 시점에서

혼술과 혼밥은 고독과 융합되는 문화다. 외로움이 아니라.

 

2편보다 1편이 좀 더 깊이 있게 와 닿는 건 경제적인 변화 때문일지도 모른다.

게다가 좀 더 드라마틱한 개인의 이야기도 양념처럼 잘 버무려진 것 역시 1편이기도 하다.

그래서 사람 냄새가 더 많이 묻어나는 것도 1편이다.


하지만 두 권의 차이가 느껴지는 이유는

지금의 일본과 1편을 그리던 그때의 일본이 그만큼 달라진 탓도 있지 않을까..

 

 

 


 

 

 

자신의 결정에 대한 책임을 지지 못할 경우, 그 순간 자유는 박탈 당한다.

 

 

 

 

 

먹기 싫은 것도 먹어야 하고

하기 싫은 일도 해야 하는 것

 

그게 현실이다.

 

자유는 그런 현실 속에서 책임을 바탕으로 유지된다.

 

 

 

 

 

 

p.s.

 

음식이나 책이나 섭취하고 소화해야 하는 것은 매한가지다.

재료와 조리 방식에 따라 소화되는 시간이 다르긴 하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소화시킬 능력인 것 같다.


그리고 음식마다 먹는 방식이 있듯이 책도 읽는 방식이 저마다 다르다는 걸 생각하게 한다.

 

고독한 미식가는 2권 덕에 1권을 더 음미하며 읽게 되었다.

그리고 2권 덕에 1권이 얼마나 영양가 높은 깊이 있는 책인지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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