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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with ... 책

006. 그 시절,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by story-opener 2020. 10. 21.

 

 

 

 

 

내가 ‘난장이’를 쓸 당시엔 30년 뒤에도 읽힐 거라곤 상상 못했지. 앞으로 또 얼마나 오래 읽힐지, 나로선 알 수 없어. 다만 확실한 건 세상이 지금 상태로 가면 깜깜하다는 거, 그래서 미래 아이들이 여전히 이 책을 읽으며 눈물지을지도 모른다는 거, 내 걱정은 그거야.


― 2008년 발간 30주년을 맞아, 한겨레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광주대단지사건을 소재로 하였으며 상대원공단이 나오는데, 

이러한 사회 비판적인 면을 군사정권에서 용납할수 없다는 이유로 금서로 지정했다.

 

소설 속 행복동으로 나오는 곳은 실제로 서울 중림동을 배경으로 설정된 공간이다.

 

1970년대 전국을 휩쓴 재개발 열풍 속에서 짓밟히고 부서지는 한 가족의 처참한 현실이
그 시절 청년실업, 빈부격차, 흙수저 논란으로 어려운 상황을 살던 젊은층들에게서 큰 공감을 끌어낸 작품이다.

 

하지만 그 현실이 그때 뿐이었다고 말하지 못하는 지금의 현실도 비참하긴 매한가지이다.

오히려 지금의 젊음은 과거 그 시절부터 꿈틀거린 그 변화가 더딘 것에 더 큰 상처를 안고 있는지도 모른다.

 

 

 

 

 

p.110

 

'폭력이란 무엇인가? 총탄이나 경찰 곤봉이나 주먹만이 폭력이 아니다.
우리의 도시 한 귀퉁이에서 젖먹이 아이들이 굶주리는 것을 내버려 두는 것도 폭력이다./
반대 의견을 가진 사람이 없는 나라는 재난의 나라이다. 누가 감히 폭력에 의해 질서를 세우려는가?/


십칠 세기 스웨덴의 수상이었던 악셀 옥센스티르나는 자기 아들에게 말했다.


"얘야, 세계가 얼마나 지혜롭지 않게 통치되고 있는지 아느냐?" 사태는 옥센스티르나의 시대 이래
별로 개선되지 않았다./ 지도자가 넉넉한 생활을 하게 되면 인간의 고통을 잊어버리게 된다.


따라서 그들의 희생이라는 말은 전혀 위선으로 변한다. 나는 과거의 착취와 야만이 오히려 정직하였다고 생각한다./


햄릿을 읽고 모차르트의 음악을 들으면서 눈물을 흘리는 (교육받은) 사람들이 이웃집에서 받고 있는 인간적 절망에
대해 눈물짓는 능력은 마비당하고, 또 상실당한 것은 아닐까?/ 세대와 세기가 우리에게는 쓸모도 없이 지나갔다.


세계로부터 고립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세계에 무엇 하나 주지 못했고, 가르치지도 못했다.


우리는 인류의 사상에 아무것도 첨가하지 못했고.....남의 사상으로부터는 오직 기만적인 겉껍질과 쓸모없는가 장자리
장식만을 취했을 뿐이다./

 

지배한다는 것은 사람들에게 무엇인가 할 일을 준다는 것,

그들로 하여금 그들의 문명을 받아들이게 할 수 있는 일,

그들이 목적 없이 공허하고 황량한 삶의 주위를 방황하지 않게 할 어떤 일을 준다는 것이다.'

 

 

 

 


 

 

p.166


"여러분은 십 대 노동자 문제를 놓고 삼십 분 동안이나 이야기를 했습니다.

모르면서 아는 것처럼 이야기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십대 노동자에 대해 죄스러운 마음 없이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나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행복동에 살 때 어느 분의 소개로 난쟁이 아저씨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평생 동안 고생만 하시다 돌아가셨습니다.

그분의 아들과 딸이 공장 지대에 가 일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복잡하고 힘든 일을 합니다.

그들의 어린 동료들은 자기 자신을 표현할 줄도 모르고,

인간적인 대우를 어떻게 해야 받는지도 모릅니다.

현장 일이 그들의 성장을 짓누르고 있습니다.

위에서는 날마다 무지한 생산 계획을 세웁니다.

노동자들은 기계를 돌려 일합니다.

어린 노동자들은 생활의 리듬을 기계에 맞춥니다.

생각이나 감정을 기계에 빼앗깁니다.

학교에서 배운 것 생각나죠?

그들은 낙하하는 물체가 갖는 힘,

감긴 태엽 따위가 갖는 힘과 같은 기계적 에너지로 사용됩니다.

그래서, 나는 여러분처럼 십 대 노동자 이야기를 하며

노동이라는 말, 의무라는 말, 자연적인 권리라는 말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처럼 그들을 돕자고도 말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갖는 감상은 그들에게 아무 도움을 못 줍니다.

난쟁이 아저씨의 아들딸과 그 어린 동료들이 겪는 일을 보고 느낀 것이 있습니다.

197x 년, 한국은 죄인들로 가득 찼다는 것입니다.

죄인 아닌 사람이 없습니다."

 

이야기를 하다 말고 윤호는 기타 소리를 들었다.

남자아이가 구석 쪽으로 가 기타를 치기 시작한 것이다.


"계속하세요."


여자아이가 말했다.


"아주 작게 쳐."


다른 여자아이가 남자아이에게 말했다.

그것은 슬픈 음악이었다.

그 기타 소리가 은하계의 별들을 떠올리게 했다.

윤호는 작은 별들의 운행을 생각했다.

경애는 말 한마디 없이 윤호만 쳐다보았다.

윤호는 죽은 난쟁이의 아들딸이 공장에서 겪는 몇 가지 실례를 들어 주고 이야기를 끝냈다.

 

난장이의 큰아들은 자동차 조립 공장에서 드릴 일을 했다.

작은아들은 연마 일을 했다.

딸은 방직 공장에 나가 틀 보기 일을 했다.

 

큰아들은 지금 일을 못하고 있다.

 

그러나 아이들은 윤호의 이야기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아이들을 끌어들여 이해시키기 위해서는

'노동 수첩'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줘야 하고,

노동자들이 인간으로 받는 대우를 하나하나 열거해야 하고,

현장 설명을 구체적으로 해야 하고,

그곳 하늘빛을 세세히 묘사해야 하고,

그들의 식탁과 잠자리를 이야기해야 하고,

고용주와 피고용인이 갖는 힘의 불균형과 그에 의한 분배를 말해야 하고,

노동 운동의 역사를 들춰야 하고, 불편한 잠자리에서

고향 꿈을 꾸다 일어나 앉는 어린 소년소녀 노동자들의 얼굴 표정을 설명해야 한다.

 

윤호는 단념하고 이야기를 끝내버렸다.

 

 

 

 

 


 

 

 

 

p.259

 

과학자는 그것을 '클라인 씨의 병'이라고 했다. 그림③이 바로 그것이다. 과학자는 그림①과 같은 유리 대롱으로 그 병을 만들었다.
그림②처럼 원기둥의 한쪽을 넓게 하고 그 반대쪽을 좁게 변형시킨 다음 벽에 구멍을 뚫어 그림③을 완성한 것이다.

종이는 안과 밖 두면을 갖는데, 학자들은 '안팎이 없는 한 면의 종이' '안팎이 없고 닫혀 있는 공간' 등, 상식적으로는 생각할 수 없는 이상야릇한 것들도 연구하게 된다고 했다. 과학자가 과인 추상적인 측면에서 연구하여 발표한 것이라고 했다. 과학자는 의아해하는 나에게 말했다. "이것이 클라인씨의 병야. 안팎이 없는데 닫힌 공간이 있어." 나는 그림③의 병을 열심히 들여다보았다.

보이는 것도 단순하고 설명도 간단한데 뭐가 뭔지 통 알 수가 없었다. 나는 내가 정상적인 학교 교육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가장 초등적이며 단순한 생각이 기본이 된 문제도 이해하지 못한다고 믿었다. 그런데 과학자는 교육적으로 어떤 훈련을 받지 않은 사람이라도 상식적인 방법에 의해 문제의 핵심을 뚫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논리의 구애를 받으면 문제를 자꾸 복잡하게 만들게 되니까 쉽게 생각하라는 것이었다. 나는 아주 오랫동안 그것을 들여다보았다.

 

(....)

 

추위가 서서히 풀리기 시작한 어느 날 나는 과학자를 찾아갔다. '클라인 씨의 병'은 그의 방 창가에 놓여 있었다.
나는 그 병을 들여다보았다.
"이제 알았어요"
빠른 목소리로 나는 말했다.
"이 병 속에서는 안이 곧 밖이고 밖이 곧 안입니다. 안팎이 없기 때문에 내부를 막았다고 할 수 없고, 여기서는 갇힌다는 게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벽만 따라가면 밖으로 나갈 수 있죠. 따라서 이 세계에서는 갇혔다는 그 자체가 착각이에요."
과학자는 나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대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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