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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with ... 영화

홍콩반환 속 중국이주민들의 삶과 러브스토리, 첨밀밀 (1997)

by story-opener 2020. 11. 16.

 

Comrades : Almost a Love Story, 甛蜜蜜

 


로맨스/멜로
홍콩
1997.03.01 개봉
115분,
15세 이상 관람가
감독) 진가신
주연) 여명, 장만옥

 

 

 

 


10년을 이어온 만남, 이별 그리고 재회
매일 눈을 떴을 때 너를 보고 싶어…

 

1986년 홍콩,
상해 출신의 소군과 이요의 운명적인 만남이 시작된다.


대만 최고의 가수 등려군을 좋아하는 두 사람은 꿈을 위해 왔지만
낯설기만 한 홍콩에서 서로를 의지하며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소군에게는 성공 후 결혼하기로 한 약혼녀가 있었고,
이요는 돈을 벌어 집을 사겠다는 야심이 있었다.

 

이요는 악착같이 모은 돈으로 주식에 투자하지만 실패하고 빚만 지게 된다.
불안한 미래 속에 갈등하던 중 암흑가 보스와 연인 관계가 된다.

 

그렇게 헤어진 뒤 1990년,
이요는 소군의 결혼식에서 3년 만에 재회하게 된다.

 

여전히 서로를 향한 사랑을 확인하지만
갑작스러운 사고로 이요는 애인을 따라 떠나고 소군만 남게 된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미국으로 떠난 소군은
가수 등려군의 사망 소식을 알리는 전자대리점 앞에서
운명처럼 이요와 조우하게 되는데…

 

 


 

1997년,

그 해는 홍콩 반환이 있었고,
한국에는 IMF가 찾아왔다.

 

이 영화는 정확히 홍콩 반환 4개월 전에 개봉된 영화이다.
영화 개봉 즈음 중국의 개혁개방과 홍콩 반환을 이루어낸 등소평이 죽었다. (97.2.19)

 


 

첨밀밀(甛蜜蜜)

꿀처럼 달콤하고 달콤하다.

 

Comrades : Almost a Love Story

동지, 전우, 동료 :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는

 

 

 

 

홍콩 반환을 생각하고 영화를 바라보면
영화는 사랑을 빌어 홍콩 반환을 앞둔 그 시기의 불안과 두려움을 상징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영화이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이요는 홍콩을 상징하고
소군은 중국을 상징한다고 생각해 보면 영화가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다.

 

홍콩은 중국 본토의 정체성과 영국의 정체성이 동시에 존재하는 곳이고
서로 다른 두 이념이 공존하는 곳이기도 하다.

 

이요도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고
광둥어와 중국어(본토)를 모두 사용하며 마치 홍콩인인 것처럼 행세하는 면에서
홍콩의 어정쩡한 정체성을 대변하는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그렇게 홍콩이라는 타지에서 서로 알지도 못하는 두 남녀가 (홍콩과 중국) 만나고
서로 사랑하게 되지만 결국 둘은 이어지지 못한다.

 

그건 어쩌면 홍콩과 중국이 하나가 될 수 없다는 걸 상징하는 걸지도 모른다.

 

결국 이요는 광저우 중국 본토로 돌아가게 되는데

그건 홍콩이 다시 중국으로 반환된다는 걸 의미한다.

 


 

그러나 영화 첨밀밀은 단순히 홍콩 반환만을 말하고 있는 영화는 아니다.

이 영화가 대단한 이유는 홍콩의 역사를 통해 중국인들의 방랑을 기록한 영화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두려워하고 불안해하는 이유는 홍콩 반환이 아니라

그로 인해 또다시 거주지를 박탈당하거나 다른 곳을 찾아 떠나야 하는 방랑이 끝나지 않기 때문이라는 걸

영화는 주인공들의 이주와 이민으로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그 방랑은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기 때문에 벌어지는 결과라는 걸

두 남녀의 방황을 통해 말하고 있기도 하다.


 

 

 

 

 

1986년 만남, 넌 내 유일한 사랑...
1987년 이별, 하지만 넌 내 목표가 아니야...
1990년 재회, 네 곁에 머문 또 하나의 사랑...
1993년 이별, 넌 이렇게 또 나를 떠나지만...
1995년 그날, 넌 내곁에 있게 될 거야.

.


.

1983년 영국령 홍콩의 페그제 실시 (홍콩달러와 달러의 고정 환율제)
1985년 미국 플라자 합의 -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이 시작된 순간 / 홍콩 반환 1997년으로 확정 발표
1987년 블랙 먼데이
1990년대 아시아의 4龍(대한민국·홍콩·대만·싱가포르)

 

 

 

 

 

동남아시아의 요지에 위치한 홍콩은 영국에 조차된 뒤,
영국의 주요 무역항, 금융 허브로서 동남아시아의 경제중심지로 부상한다.

 

1950년대 이후, 공산당이 집권한 중국 대륙은 사회주의 시스템을 채택하면서 정치적, 경제적으로 굴곡 있는 시간을 보낸 반면,
홍콩은 경제적으로 큰 성과를 이루며 두 지역 간의 격차는 더욱 심화되고,
1979년부터 중국의 등소평이 개혁개방을 선포하고 추진하면서 홍콩은 새로운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그동안 국제 경제에서 고립되었던 중국 대륙과 서방 자본주의 국가의 자본을 연결하는 통로로 기능하기 시작하면서
중국 대륙 역시 홍콩과 가까운 지역(선전, 광저우, 주하이 등)을 "경제특구"로 지정하고,
이 경제특구 위주로 집중적으로 외국 자본을 유치하고 공장을 건설하면서 경제건설의 창구로 삼게 된다.

 

영화 속 이요는 그런 경제특구로 지정되었던 광저우 출생이기도 하고 홍콩과 가까이에 있으니 광둥어와 본토 어를 할 수 있게 되고
홍콩을 바라보는 시선도 중국 본토인보다 더 가까울 수밖에 없다.

 

조금씩 자본시장을 넘나들며 삶의 질이 달라지자 1986년 즈음 중국은 더 많은 돈을 좇기 시작한다.

 

 

 

1986년 경 중국 베이징의 모습

 

 

 

 

1980년대 홍콩의 모습

 


영화는 홍콩 반환 협상이 마무리되어 '97년 7월 1일 반환됨'을 공식 발표한 85년을 지나
그다음 해인 1986년을 배경으로 시작한다.

 

눈치 빠른 사람들이 돈을 벌기 위해 앞다퉈 도시로, 홍콩으로, 해외 화교 지역으로 빠져나가던 시점이었다.

등소평은 사회주의로 환원을 두려워하는 식민지 지배국 영국(1997년까지 150년간 조차)과 홍콩 부유층을 달래기 위해
'일국양제'라고 부르는 방식을 채택한다.


하나의 중국이라는 기치 아래 사회주의(본토), 자본주의(홍콩)의 서로 다른 체제를 향후 50년간 유지하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홍콩 부유층들과 대다수 주민들은 문화혁명 시절을 기억하기 때문에 홍콩 반환을 두려워하며 해외 이주를 시도하고 있었고
중국 본토 사람들 중 이해관계가 밝은 사람들은 홍콩으로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이주해온다.

 

영화의 두 주인공도 이때 홍콩으로 건너온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다.

 

이 시기는 80년대 초중반의 홍콩 영화 황금기가 끝나가고 있던 시점이었고
숱한 유명 홍콩 스타들도 앞다퉈 반환 전에 캐나다, 미국, 호주, 말레이시아 등 해외로 도피하고 있던 시점이다.

 

결국 중국 본토 이주민이 홍콩으로 들어오자 홍콩 원주민들이 동남아시아 및 미국 등으로 이민을 가거나 이주를 하게 되는 또 다른 이주 난민을 만들게 된 시기이기도 하다.


 

 

 

 

 


약삭빠르고 이재에 밝으며 악착같은 이요는
오전에는 꽃집에서 일하고
오후에는 맥도널드에서 알바를 하고
저녁에는 영어학원에서 청소 알바를 하면서 귀동냥으로 영어수업도 함께 듣기도 하고
본토 출신들에게 학원 수강을 시키고 수수료를 챙긴다.

그녀는 일명 돈 많은 여자가 되길 꿈꾸며 같은 본토 사람들을 속이면서까지 벌어들인 소득을
모두 주식에 투자하는 것으로 돈을 모으고 있다.

 

 

 

 

 

그럼, 그녀의 통장에 들어있는 12,639.91 달러는 얼마일까?

 

홍콩은 1983년 이후 지금까지 고정환율제를 적용하고 있다.
따라서 12,639.91 달러는 지금의 환율 계산과 같은 금액이 나온다.
대략 한화로 1,807,303원이 된다.

 

그렇다면 1986년 당시 이 돈의 가치는 지금의 얼마로 환산될 수 있을까?
1986년의 100만 원은 지금의 3,210,883원의 가치를 갖는다고 한다.
그럼 이요가 모은 돈은 대략 640여만 원이 된다.

 

영화 마지막 부분에서도 나오지만
이요 역시 1986년 3월에 소군과 같은 열차를 타고 홍콩에 입성했다는 걸 감안하면
단 몇 개월 만에 640여만 원을 모았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다고 봐야 한다.

 

월세와 기타 유지비를 뺀 나머지를 몽땅 저축한다고 해도 8~9개월 만에 640여만 원을 모았다는 건 허리띠를 졸라매도 불가능한 일이다.

그 시절 인건비가 높았을 리는 만무할 테니 누가 봐도 투자가 아니고서는 모을 수 없는 돈임을 잘 알려주고 있다.

 

 

 

 

 

반면 소군은 아침 6시부터 고기 배달을 하고
한 달에 2천 달러에 보너스를 얹어 받는다.

 

대략 한화로 285,968원 정도 되고 지금의 가치로 따지면 107만여 원 정도가 된다.
소군은 본토 고향인 상하이에 있는 자신의 애인에게 편지를 쓰며 자랑을 한다.
이 정도면 중국의 당간부도 못 버는 돈이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푼도 쓰지 않고 6~7개월을 모아야만 이요가 모은 액수만큼 손에 쥘 수 있는 금액이다.

 

 

 

 

그러니 소군은 이요의 통장 잔액을 보며 놀랄 수밖에 없고, 자신도 그녀의 방법으로 돈을 벌고 싶은 건 인지상정 아닐까.

 

 

 

 

 

하지만 이요는 단호하게 말한다.

 


 

 

 

 

 

 

 

 

 

빅토리아 공원에서 덩리쥔(등려군)의 음반을 팔기 위해 두 사람은 한 껏 들떠 있는 분위기다.
이요는 수익에서 천 달러를 배분해주겠다며 기세 등등한 사업가인 양 큰 소리를 친다.

 

 

 

이 장면에 나온 빅토리아 공원은 훗날 천안문사태 이후 민주화 촉구 시위장소로 유명해진 곳이다.

 

 

 

But,

 

 

 

 

 

이요는 자신이 광저우에서 사촌과 장사를 했을 때처럼 홍콩에서도 그녀의 테이프가 많이 팔릴 것이라 기대했지만 그 기대는 보란 듯이 꺾이고 만다.

 

 

영화에서는 덩리쥔(등려군)의 이름을 테레사 텡으로 번역했다.

 

 

결국 가격을 다운시키며 팔아보려고 소리를 질러봐도 테이프를 사러 오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이 장면은 감독이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전부 담겨있다고 본다.

 

덩리쥔(등려군)의 음반을 가장 저렴하게 살 수 있는 유일한 기회라고 외치는 이교의 얼굴과 본토의 상징으로 사용된 여가수의 이미지가 오버 랩 되는 장면은 마치 홍콩과 중국의 관계가 그런 것처럼 제 아무리 외쳐대도 누구 하나 거들떠보지 않고 제 갈길만 가는 모습 속에 마치 외로운 홍콩을 대변하는 듯한 모습이어서 안타깝기까지 하다.

 

어차피 장사는 망하는 걸로 결론이 정해져 있는데 아무리 팔아 보려고 발버둥을 쳐도 단 한 장도 팔지 못하는 이교의 상황이나
어차피 중국으로 반환될 것이 정해져 있는데 아무리 반대하며 기를 써도 누구 하나 손을 내밀어 주지 않는 홍콩의 상황이나
서로 다르지 않다는 걸 보여 준다.

 

 

 

 

 

 

하지만 영화는 그 외로움을 소군의 등장으로 위로해주게 된다.
빗 속에서 홀로 외쳐대는 이교에게 소군은 따뜻한 음료를 내밀고 그녀를 다독여준다.

 

그리고 그녀의 테이프가 팔리지 않는 건 당연한 일이니 슬퍼하지 말라는 듯 고모가 했던 말을 전해준다.

 

 

 

 

홍콩에서는 본토인을 이류 취급하기 때문에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기 싫어한다.
그러니 이런 공개적인 장소에서 덩리쥔(등려군) 음반을 사지 않는 건 당연한 결과이다.

 

이요 자신도 덩리쥔(등려군)의 노래가 흘러나올 때 행여 자신이 본토에서 왔다는 게 들킬까 조심하면서 눈치 보며 따라 부르지 않았던가!

 

결국 이 일을 계기로 이요는 자신이 광저우 출신임을 밝히게 되고, 그녀의 말에 소군은 더욱 친밀감을 갖게 된다.

 

 

 


"그럴 줄 알았어요. 우리 동무네~"

 

"절대 아녜요! 난 광둥어 한다고요.

우리 둘 다 홍콩 비디오 보고
홍콩 음료수 마시고
홍콩에 훨씬 더 가깝잖아요."

 

"당신 스타일도 그렇고
옷이랑 태도도 그렇고
엄청 홍콩스러워요."

 

"나 바보 만들어요?"

 

 

 

 

 

알면서 왜 말 안했냐고 물어보는 그녀의 질문에 소군은 솔직하게 대답하게 되고

그런 소군의 답변에 결국 이요도 자신의 외로움을 털어놓는다.

 

 

 

 

 

그리고 두 사람은 함께 밤을 보내게 된다.

그렇게 1987년을 코 앞에 두고 두 사람의 관계는 발전하게 된다.

 

그러나 두 사람이 친밀하게 되는 계기는 아이러니하게도 서로의 민낯을 드러내고 둘의 공통점을 확인하게 된 순간이다.

그리고 둘은 비로소 서로의 공통점을 인정하며 공감대를 이루게 된다.

 

이요의 고백은 현실적으로 홍콩에 사는 본토 이주민들이라면 누구나 격하게 공감할 내용일 것 같다.

 

친구가 없다는 현실은 방랑 민, 난민, 이주민 등등으로 불려지는 그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단 하나의 성향일지도 모른다.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든 언제나 친구가 없는 현실. 그게 홍콩 이주민의 본질이라는 걸 두 사람의 관계를 통해 드러내고 있다.

 

그 공통점 하나로 그동안 서로 알게 모르게 의지하며 지내온 시간들이 단순하게 축적된 감정이 아니라는 걸 말해주고 있다.

서로가 친구를 만들 수 없는 같은 입장(평생을 떠돌아다니는 이주민)이라는 이유만으로 소군이 이요를 평생 잊지 못하는 마음이 이해되는 순간이고, 이요가 후에 파오를 떠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요의 주식은 32,639.91 홍콩달러로 계속 오르고 있었다.
한화로 4,666,979원 정도가 되고
이 금액은 1987년 100만 원이 지금의 3,115,887원의 가치를 갖는다고 하니
지금의 가치로 환전한다면 대략 14,333,080원이 된다.

 

신기한 건 앞서 1986년도의 100만 원의 가치보다 1987년도 100만 원의 가치가 더 떨어졌다는 점이다.
86년도에 3,210,883원에서 87년도에 3,115,887원으로 94,996원으로 화폐가치가 하락했다.

 

만약 이 시점에 이요가 이 상황을 알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통장 잔액을 확인한 순간 바로 돈을 찾았다면 그녀의 삶은 달라졌을까?
그럼 이요와 소군의 관계도 다른 결과를 갖게 됐을까?

 

 

 

 

하지만 이요는 주식에 대해 뭔가를 알아서 했다기 보다 여기저기 풍문으로 듣고 따라하는 수준이다. 

 

이요는 마르크가 오르고 있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모르고 있었다.

 

마르크화 강세로 무역수지 적자가 심해져 경제가 더욱 어려워진 독일이

미국의 달러약세를 강압적으로 협약한 플라자합의에 불만을 토로하기 시작했다는 것과

당시 독일보다 더 극심한 무역수지 적자를 헤어나오지 못한 미국은 오히려 그 적자 폭이 심해지기만 하고

감세정책(기업 법인세 감세)로 재정적자를 줄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이론도 좀처럼 현실화 되지 않고 있었다는 걸 이요는 알 길이 없었을 것이다.

 

그런 상태에서 홍콩이 어떻게 금융도시가 되었는지도 알 길이 없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저 홍콩에서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은 주식이 가장 빠르다는 소문을 접했을 뿐이고,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모든 안테나가 주식으로 쏠려있었을 뿐이다.

 

미국은 레이건 정부와 FRB 정책덕분에 1987년 여름까지도 주식이 2500포인트를 넘을 정도로 활황을 누리고 있었고 달러에 연동된 홍콩 항셍지수도 그에따라 고점을 찍는 건 당연한 결과였다.

하지만 정점을 찍게 되면 하락을 우려하는 분위기가 감돌기 시작한다는 걸 눈치채지 못한 미국 주식시장에서 급매도로 돌아서는 건 순식간에 벌어지는 일이다.

 

더군다나 1985년 플라자합의로 달러약세를 묶어 놓긴 했지만 상황은 오히려 악화되어 달러 약세를 지나 달러가치 하락으로 치닫자 1987년 루브르 협약을 통해 달러 가치 하락을 막기 위한 합의, 즉 달러 가치를 현 상태로 유지할 것을 다짐 받으려 했지만 독일은 더 이상 달러약세에 의한 마르크 강세를 감당하지 않겠다고 나선다.

결국 강대국인 독일의 합의를 끌어내지 못한 루브르 협약은 플라자 합의때만큼의 효과를 얻지 못하고 시장에 불길한 기운만 감돌게 만들게 된다.

 

게다가 미국내 M&A시장이 주식시장과 연동되어 불필요한 거품을 생성하고 터뜨리며 상황은 더욱 불길하게 만들고 블랙먼데이의 조짐은 주가하락으로 드러나기 시작한다.

 

이런 상황을 미국내에서도 감지하기 어려운 현실인데 하물며 먼 홍콩에서 하루 24시간을 쏟아부어가며 모은 돈으로 주식에 투자하는 이요가 자신의 돈이 털릴 것이라는 걸 어떻게 알 수 있었겠는가.

 

그저 어제도 오르고 오늘도 올랐으니 내일도 오를 것이라고만 믿어 의심치 않을 뿐이다.

 

 

 

 

 

소군이 자신에게도 가르쳐 달라고 하자 그저 소군은 다치게 하고싶지 않다는 핑계로 방법을 알려주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반면 소군은 자신에게 요리를 알려줄 스승을 만나게 되고 요리사가 되기 위해 준비할 수 있게 된다.

 

후에 홍콩반환을 앞두고 중국에서 천안문사태가 벌어지자 불안함을 느낀 스승은 결국 미국으로 건너가게 되고 그는 소군의 두 번째 삶에도 큰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된다.

 

 

 

 

어찌됐든 소군은 그가 요리사로 버는 소득이
넉넉하게 한 달에 만달러(한화1,429,838원이고 현재 가치로 따지면 월460여만원 정도)는 

된다는 생각에 자신이 운이 좋다고 뿌듯해 한다.

 

그렇게 이요와 소군은 서로의 기대를 품고 1987년 여름을 보낸다.

 

이요는 더 많은 돈을 투자하기 위해 더 많은 돈을 주는 알바로 옮기게 된다.

 

이요의 주식이 오를즈음 홍콩에서도 부동산이 치솟고 그에따라 너도나도 아파트 분양을 받기 위해 줄을 서게 되면서
부동산에서는 대신 시간내서 줄을 서주는 알바를 채용하게 되는데 자리 하나 당 5천달러의 수당을 받는 고가의 알바였다.

 

 

 

 

 

이요는 소군과 함께 분양자리 알바를 뛰게 된다.

 

 

 

 

유난히 뜨거운 여름을 보내고 있는 홍콩은 아파트 분양 열기가 이 여름의 더위보다 더 뜨겁다는 걸 보여준다. 

 

 

 

 

그리고 그 열기 속 한 가운데에 있는 이요도 홍콩을 기회의 나라라고 굳게 믿으며

자신의 꿈이 현실이 될거라는 것도 믿어 의심치 않는다.

 

 

 

 

 


 

 

 

 

 

1986년, 1987년에는 이 곳의 문이 열려있었지만 그녀의 통장잔고가 바닥으로 곤두박질 치자 이 곳의 문도 닫혀 있는 모습이다.

 

 

1987년 10월 그들에겐 아니, 이요에게 인생 최대의 위기가 닥친다.


블랙 먼데이.

 

그녀의 통장은 순식간에 비어버리고 그녀에게 남은 건 빚더미 뿐이다.

 

 

 

 

결국 빚을 떠 앉은 이요는 안마사의 표피를 쓴 화류계로 빠진다.

 

그러나 소군은 이요가 안마사라는 것을 따지지 않는다.

그저 이요가 자신과 멀어질까 걱정될 뿐 다른 건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무딘 사람이다.

 

정식으로 결혼 할 사람이 있으면서 그는 아무렇지 않게 자신의 애인과 똑같은 선물을 이요에게도 한다.

 

이요는 그런 소군의 모습을 보며 더욱더 자신이 비참해 지는걸 느끼게 되고
오히려 이런 자신의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할까 두려워 한다.

 

 

 

"귀향해서 소정과 결혼하는게 네 꿈이라며, 아니야?"
"...."

"돌아가서 소정이랑 결혼해!
내꿈은 다주 달라.
우린 아주 다른 사람들이야."
"...."

 

 

 

"정말 불안해.
그리고 이 느낌이 정말 싫어."

 

영화는 순간순간 이요를 통해 홍콩의 현실을 드러낸다.

실제로 홍콩반환을 앞둔 홍콩의 두려움과 불안함이 이요의 현실을 통해 고백하듯 내뱉는다.

 

 

 

"며칠 전에 엄마한테 전화해서
주식으로 한 건 크게 터트린다고 했어.

 

근데 지금 나를 봐.
땡전 한 푼 없지."

 

 

 

 

 

"난 뭘 한 거지?"

 

 

 

 

"바로 내일도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


무서워, 어떻게 할지 모르겠어"

 

 

 

 

 

이 말을 남기고 이요는 그를 떠난다.

 

 


 

 

그리고 1989년 5월

 

 

 

 

 

홍콩 반환 시점이 확정되고 긴장감이 고조된 1989년, 중국 한복판 북경에서 '천안문 사태'가 발생하며
수천 명의 민주화 운동가와 학생들이 학살되는 충격적 사태가 발생한다.

 

등소평을 온건한 개혁가로 애써 믿고 싶었던 홍콩 시민들에게는 엄청난 쇼크로 다가왔고
홍콩인들은 재력 순으로 서로 앞다퉈 빠져나가며 그 자리를 중국의 이주 노동자들이 채워 가던 시점이기도 하다.

 

1990년,

앞서도 언급했듯이 소군에게 요리를 가르쳐주던 스승도 소군의 결혼식 참석을 마지막으로 하고

미국으로 떠나지만 소군은 본토에 있던 애인을 홍콩으로 부르고 이 곳에서 결혼식을 올린다.


 

 

 

 

 

3년이 지나고 그들은 서로 다른 모습으로 재회한다.

 

 

 

 

빚을 갚기 위해 안마사가 됐던 이요는 그곳에서 조직의 두목격인 파오를 만나 애인이 되고
부동산투자를 비롯해 웨딩드레스 샵을 운영하는 등 신분이 급상승한다.

 

소군은 요리를 배운 기술로 부주방장까지 실력을 쌓게 되고

가정을 꾸리기 위한 준비를 시작한다.

 

 

 

 

그렇게 하나씩 이룬 듯한 모습으로 두 사람의 재회는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고

아슬아슬한 시간을 보내게 되지만

 

 

 

 

결국 서로의 마음을 다시 확인하게 된 두 사람은 모든 걸 내려놓고 다시 시작하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각자의 연인들에게 이별을 알리기로 결심하지만

이요는 파오의 도피를 외면하지 못하고 그가 자신을 필요로 한다는 걸 알게 되자

결국 파오와 함께 홍콩을 떠나게 된다.

 

 

 

 

처음에는 요리를 알려준 스승이 홍콩을 떠나고

이젠 파오와 이요가 홍콩을 떠난다.

 

이요가 자신을 떠났다는 걸 알게 된 소군은 더 이상 결혼생활을 할 수 없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고

아내에게 모든 사실을 알리고 이혼을 결정하게 된다.

 

그리고 그 즈음 자신을 홍콩에 머물 수 있도록 받아준 고모의 임종을 맞게 된 소군은

고모가 그리워 한 월리엄 홀덴과의 만남이 사실이었음을 알게 된다.

 

 

 

 

1953년 유명 헐리우드 스타 월리엄 홀덴이 홍콩에서 영화'모정'을 찍을 때
'페닌슐라 호텔'에서 만나 식사를 한 적이 있다고 우기며 그에 대한 환상으로 살아간 고모는 그와의 기념 사진을 놓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하게 된다.

 

 

 

 

실제로 윌리엄 홀덴이 찍은 영화 '모정'은 그 당시 홍콩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두 남녀의 절절한 사랑을 그리는 영화이다.

영화 속 여주인공은 영국과 중국의 혼혈인으로 그려지고 두 사람은 홍콩이라는 절묘한 공간에서 그 사랑을 키워가지만 극중에서 미국 특파원으로 나오는 윌리엄은 한국 전쟁을 취재하기 위해 종군기자로 가게 되고 결국 한국전쟁에서 목숨을 잃게 되자 둘의 사랑이 비극적 결말을 맺는 것으로 끝나는 영화이다.

 

아마도 고모가 평생 윌리엄을 기다리다 죽게되는 상황도 영화 모정을 배경으로 설정된 캐릭터가 아닐까 생각된다.

 

반면, 현실적으로 고모의 캐릭터를 본다면 조금은 다르게도 해석 할 수 있게 된다.

 


1950년대 홍콩은 지금보다 더욱 불안한 삶을 살고 있던 시대였다.

 

1949년 사회주의 국가인 중화인민공화국이 건국되자, 정치적으로 사회주의에 반대하던 망명자들은 홍콩과 대만으로 이동하게 된다. 

그 중에서도 1949년부터 1953년까지 홍콩과 중국의 국경 LOWU(羅湖)을 넘는 중국 난민이 백만명 남짓 되는데

영국정부(홍콩정부)는 중국의 사회주의와 영국의 자본주의는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난민 대부분을 수용하고 이들을 구룡반도 일대에 판자촌을 만들어 수용한다. 

 

 

 

 

그러나 그들은 대부분 지식인 계층으로 판자촌 생활을 비롯한 홍콩 정부의 현실적 대응책에 불만을 갖게 되고 1953년 난민집단의 방화로 인하여 구룡반도 Sek Kip Mei 지역의 판자촌 80%가 소실된다.

 

이 사건을 계기로 1953년 말 홍콩정부는 임시방편으로 가구당 5평 정도의 정부아파트를 최초로 공급하게 된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도 난민생활을 시작으로 홍콩에 정착하려는 중국이주자과 그들이 자신들의 생활권에 들어오는 걸 반대하는 홍콩원주민들과의 갈등이 극에 달하는 상황에 이르자 홍콩정부는 주민증자체에 중국난민의 거주지를 홍콩으로 수정하게 되고 이를 계기로 중국이주자들은 자연스럽게 자신들의 출신인 Chinese라는 정체를 숨기며 Chinese 대신 HongKong People이라는 표현을 만들어 사용하는 시대가 대두 되었다.

 

이런 상황을 이해하고 홍콩을 바라보게 되면

홍콩에 사는 중국이주자들이 자신들의 정체를 숨기려는 이유와 홍콩원주민들이 그들을 차별화 했던 이유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더불어 고모가 말했던 등려군 사진이 팔리지 않을 거라는 이유도 이해되는 부분이다.

특히 고모는 홍콩으로 이주한 첫 세대였을테니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공간.

 

위에서 언급했던 구룡반도하면 다들 쉽게 떠올릴만한 곳이 있다.

바로 구룡채성 九龍寨城 이다.

 

 

1989년 홍콩 구룡채성의 모습

 

 

 

이 곳은 영국령 홍콩 내에 존재했던 중화인민공화국 영토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홍콩과 중화인민공화국 양쪽의 주권이 미치지 못한 특수지역이었다.
복잡다단한 거대한 무허가 건축물로 이루어진 슬럼 도시로, 마굴, 무법지대 등으로 불리다가 1993년에 철거되기 전까지 수 많은 영화와 영상의 모티브로 사용된 곳이었다.

 

사진을 통해서도 볼 수 있듯이 홍콩 안에 만들어진 또다른 섬처럼 구룡채성은 밖으로 펼쳐지지 못하고 안으로 썩어들어가는 고립된 공간으로 범죄의 도시가 된 곳이다. 홍콩이나 중국 어디에서도 치안조치를 받지 못했기때문에 이곳은 삼합회 등의 조직폭력배들에 의해 관리되고 있었다.

 

그러나 홍콩반환이 결정되자 주권문제가 무의미하게 되니 1987년 홍콩정부는 구룡채성을 철거하기로 결정하고 1993년에 철거된다.

 

이런 구룡채성의 존재만으로도 당시 중국이주민과 홍콩원주민 사이가 얼마나 멀고 험한 관계였을지 상상하지 않아도 짐작이 가는 부분이다.

 

 


 

홍콩에서 중국이주민으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고달픈 삶인지 생각해 본다면

고모가 그리워하는 윌리엄 홀덴을 순수한 사랑으로만 해석하고 넘기기에는 부족한 부분이 있어 보인다.

 

정녕 고모가 죽는 그 순간까지 그 끈을 놓지 못하고 있었던 것들이 단순히 유명배우와의 첫 식사 뿐이었을까?

고모가 끝까지 놓지 못한 건 그와 함께 했던 추억이 아니라 그날의 풍요로움이 아니었을까?

 

그녀가 그와 식사를 했다는 호텔은 실제로 홍콩에서도 가장 비싼 호텔이었고 그걸 기념하기 위해 윌리엄 홀덴이 잠시 한 눈 파는 사이 식기류와 냅킨을 몰래 챙겨온 이유도 그 값어치에 대한 미련이라고 보여진다.

 

진심으로 그와의 만남을 잊지 못하는 것이었다면 사진 한 장이면 충분하지 않았을까?

 

 

 

 

 

그런 의미에서 화장되는 고모의 마지막 순간은

더 나은 곳으로 가고 싶어했던 1세대 중국이주민들의 꿈이 사라져가는 이루지 못한 미련을 보여주는 것 같아 한 참을 지켜보게 만든다.

 

 

그리고 소군은 또 한 명을 떠나 보낸다.

아니, 어쩌면 소군이 보내는 게 아니라 소군의 아내였던 소정이 그를 떠나 보내는 것이기도 하다.

 

 

 

 

 

 

 

아내와 이혼한 소군은 고모의 유품과 그녀의 아파트를 처분하면서

또 하나의 이별을 맞게 된다.

 

 

 

 

홍콩에서 영어를 가르치던 미국인 영어강사.

그는 이곳에서 매춘을 통해 태국여성을 만나 사랑하게 되지만 결국 그녀가 에이즈에 걸리고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면서 함께 태국으로 향하게 된다.

 

 

 

 

그렇게 모두를 떠나보낸 그는

더 이상 이 곳에 있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고

결국 그 역시 홍콩을 떠나게 된다.

 

1990년은 재회하는 기쁨을 만끽할거라 기대하던 해가 아니라

모두가 다시 헤어지고 다시 방황이 시작되는 해였다.

 

 


 

 

 

 

미국에서 새롭게 다시 시작하는 소군의 모습은 7년 전 그가 홍콩에서 새롭게 시작하던 그 모습과 닮아 있다.

단지 조금 바뀐게 있다면 자본의 영향력을 더 많이 받은 모습이라는 것 정도다.

 

1986년의 소군과 1993년의 소군은 다른 모습이지만

그가 처한 상황은 낯선 땅에서 타인으로 살아야 하는 삶이라는 점에서 한치도 변한게 없다고 할 수 있다.

 

 

 

 

 

홍콩에서 그랬듯이 미국에서도 소군이 정착 할 수 게 기둥이 되어주는 요리스승이자 가게주인아저씨.

그역시 7년 전과 한 치도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낯선 타국에서 가게를 다시 열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삶을 반복하고

자신의 뒤를 이어 함께 일할 사람을 구하는 모습은 그때나 지금이나 하나도 달라진 게 없다.

 

그래서일까.

 

새롭게 제2의 인생을 시작하는 것 같은데 뭔가 새로운 희망보다 그저 주어진 일상에 충실할 뿐이라는 조금은 담담한 모습 속에서 언제 또 쫓겨날지 모를 불안한 기운까지 감돈다.

 

 

그리고 그 불안한 기운은 소군이 아니라 이요를 통해 불길함으로 드러낸다. 

 

 

 

 

거리에서 실랑이로 총격을 당한 파오의 죽음은 결국 이요를 또 다시 타국으로 내모는 상황이 된다.

 

 

 

 

 

공항으로 호송되는 도중에 이요는 소군을 발견하고 그를 향해 뛰어가지만

소군은 이요를 발견하지 못하고 사라지게 된다.

 

그리고 소군이 미국에 있다는 걸 알게 된 이요는 미국에서 그린카드(영주권)을 취득하기로 결심하게 만든다.

 


 

 

 

 

10년간 기회의 땅이라 불리는 곳으로 불나방처럼 쫓아다닌 시간들이 잠시 목도되는 듯한 장면이다.

아시아 속 기회의 땅이라 불렸던 홍콩

세계인에게 기회의 땅이라 불렸던 미국

그리고 다시 새로운 시장으로 부상하며 또다른 기회의 땅이라 불리길 바라는 중국

 

그러나 이요는 그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하고 있다.

 

도대체 누구에게 주어지는 어떤 기회라는 뜻인지 알 길이 없는 기회의 땅.

 

이요는 단지 이곳에서 쫓겨나지 않을 기회를 갖길 바랄 뿐이다.

 

 


 

 

 

 

 

미국에 머물 수 있는 기회를 얻은 이요는 비로소 고향으로 갈 수 있게 된다.

쫓겨나지 않고 머무를 수 있는 기회를 얻은 이요는 그 날 덩리쥔(등려군)의 사망 소식을 접하게 되고,

덩리쥔(등려군)과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있는 소군을 생각하며 걷기 시작한다.

 

마치 그녀의 사망소식이 소군의 사망소식을 접하기라도 한 듯

그린카드가 무의미하게 된 듯

망연자실한 모습으로 막연히 걷고 또 걷는 이요.

 

그러나 어느 매장의 T.V 뉴스를 보며 서 있던 이요는

자신처럼 무언가에 이끌려 T.V를 보던 남자와 마주하게 된다.

 

그렇게 소군과 재회를 하게 된다. 

 

 

 

 

그들이 서로 어떤 모습일지 알 수 없다.

소군은 결혼을 했을 수도 있고,

이요가 결혼을 했을 수도 있고,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요는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됐다.

그건 결국 홍콩이 1997년 반환된다는 사실과 연결되어 있는 모습이다.

 

하지만 영주권을 갖고 있다는 건 결국 자본주의를 버리지 못한다는 홍콩의 입장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결국 영화 첨밀밀은 중국인들의 디아스포라를 두 남녀의 사랑을 통해 현실적으로 드러낸 영화이다.

 

 

 


 

p.s.

 

디아스포라는

'흩뿌리거나 퍼트리는 것' 을 뜻하는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말이다.


특정 민족이 자의적이든지 타의적이든지 기존에 살던 땅을 떠나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현상을 일컫는다.
한자어로는 파종(播種) 또는 이산(離散)이라고도 한다.

 

유목과는 다르며, 난민 집단 형성과는 관련되어 있다.


난민들은 새로운 땅에 계속 정착했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으나,
디아스포라란 낱말은 이와 달리 본토를 떠나 항구적으로 나라 밖에 자리잡은 집단에만 쓴다.

 

난민 외에도 노동자, 상인, 제국의 관료로서 이주한 사례도 디아스포라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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