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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with ... 영화

영혼의 작별인사, 식스센스 (1999)

by story-opener 2020. 10. 22.

 

The Sixth Sense

 

미스터리/드라마
미국
1999.09.18 개봉
107분,
12세 이상 관람가
감독) M. 나이트 샤말란
주연) 브루스 윌리스, 할리 조엘 오스먼트

 

 

 

 

 

 

 

 

 

아동 심리학자인 크로우 박사(브루스 윌리스)는 필라델피아 주지사에게서 아동을 위해 기여했다는 공로로 상을 받는다.

그날 밤, 부인과 함께 2층에 올라간 말콤 박사는 낯선 침입자를 발견하게 된다.

 

그 침입자는 몇 년 전 말콤 박사가 치료를 맡았던 '빈센트 그레이'라는 환자인데, 박사는 그에게 총상을 입고 그는 자살한다.


이듬해 가을, 총상에서 회복한 크로우 박사는 '콜 시어'라는 자폐증에 걸린 8살 된 소년의 정신 치료를 맡게 된다.

 

콜은 처음엔 쉽게 마음을 열지 않다가 박사의 계속된 노력으로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비밀을 말한다. 즉 콜은 항상 귀신들이 보이며, 귀신들은 자신이 죽었는지조차 모르고, 보고 싶은 것만 본다고 이야기한다.

박사는 쉽게 믿으려 하지를 않고 마침 부인의 외도를 목격한 후 콜의 치료를 포기하려고 한다. 그러다가 박사는 옛 환자였던 빈센트와의 상담 녹음테이프에서 귀신의 소리인 듯한 소리를 듣게 되고 콜을 찾아가 콜이 귀신에 대한 공포를 이겨내는 걸 돕게 된다.

 

 


 

 

 

 

 

 

 

 

The Sixth Sense 제육감(第六感)

오관(五官)으로 느낄 수 없다고 생각되는 감각.

사물의 신비한 점이나 깊은 본질을 직감적으로 포착하는 마음의 기능.

 

육감이 있어야 하는 이유는 아마도 상대를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는 공감대 형성 때문일지도 모른다.

 

 


 

 

 

 

 

 

 

콜은 박사의 충고대로 자신을 찾아오는 유령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로 마음먹는다.

그리고 카이라가 자신을 찾아온 그 날 콜은 그 결심을 행하게 되고 카이라의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

박사와 함께 그녀의 장례식장으로 향한다.

 

 


 

 

 

 

 

 

 

 

콜은 카이라의 방으로 들어가

유령이 된 그녀가 건네 준 상자를 받아 들고

카이라의 아버지를 찾아 그 상자를 건네준다.

 

 

 

 

 

 

 

 

 


 

 

 그리고 아빠는 딸이 어떻게 죽게 됐는지 알게 된다.

 

 

 

 

 

 

 

 

 

 

 

소녀를 죽인 새엄마는 공감대 형성이 결여된 대표적인 인물이다.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걸림돌이 되는 두 아이를 서서히 죽음으로 모는 존재.

장례식장에서 가장 화려한 빨간색 의상을 입고 빨간 립스틱을 바른 여자.

죽음을 애도하는 곳에서 가장 화려한 모습으로 조문객을 맞고 있다.

그녀는 전형적인 소시오패스를 대표하기도 한다.

 

 

 

 

 

 

 

 

콜은 카이라의 아버지에게 그가 알지 못한 아니,

정확히는 그가 못 본 것을 보여준다.

꼭두각시 인형처럼 살았던 자신과 그 죽음의 진실.

 

그리고 자신의 동생을 지키려는 죽은 소녀의 집념.

그녀가 콜에게 나타났던 이유는

새엄마로부터 동생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콜은 어린 자신에게 찾아드는 유령이라는 존재를 현실적으로 받아들이면서 비로소 하루하루 용기를 내며 삶에 적극성을 갖기 시작한다.
물론 박사의 도움이 없던 건 아니다. 그리고 그 도움은 박사가 직접 개입해서 해결해주는 것도 아니다.

 

콜이 직접 그 현실을 직시할 수 있는데 힘이 되어주는 것.

콜은 이미 그들이 자신을 왜 찾아오는지 알고 있고 무엇을 원하는지도 알고 있다. 그러나 늘 외면하고 피하기만 했다.

콜에게 필요했던 건 현실을 직면하고 스스로 해결해 나갈 수 있다고 말해주며 자신을 신뢰해주는 시선이었다.

 

어린아이 옆에 조언을 하며 힘이 되어주는 박사는 그 자체로 유령이다.

 

콜은 박사가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게 도와주고,

박사는 콜이 죽음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을 준다.

 

 

 


 

 

 

 

 

 

 

 

현실을 제대로 못보는 자들.

유령과 다를 바 없는 존재들을 향해 그들에게 진실을 말하지만 진실을 들으려 하지 않는 자들.

그들에겐 언제나 믿을 수 있는 증거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증거는 자신들이 알지 못하는 것을 알게 해 주는 것이기보다

자신들만이 알고 있는 걸 들춰내는 것일 때 효력을 발휘한다.

 

 

 

 

 

 

 

아이이기 때문에 그의 말을 더 믿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오히려 마음을 보지 못하고,

상대의 겉모습에 함몰되어 있는 우리들이 유령과 다를 게 뭐가 있을까.

 

 

 


 

 

 

 

 

 

 

아이는 박사에게 말한다.

귀신들은 자신이 죽었는지조차 모르고,

보고 싶은 것만 본다고.

 

유령.

현실에 살고 있다고 착각하는 존재.

현실에 집착하고 억울함에 발목 잡혀 있는 존재.

갈 길을 잃어버린 존재.

 

그리고 자신들이 유령이라는 걸 각성하게 되는 그 순간

비로소 아이에게서 소멸된다.

 

 

 


 

 

여섯 번째 감각.

그건 상대를 인식하고 이해하며 공감하는 능력이다.

 

콜이 죽은 자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들의 억울함을 전해주고

살아있는 자들에게 메시지를 전해줄 수 있는 것은

단지, 죽은 자들을 인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존재를 인식하는 이유는

그 존재를 이해하고 알아가며 관계를 맺거나 풀기 위해서다.

 

어린 콜은 평범한 일상 속에서 주변과의 관계 맺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그건 어른들도 별반 다르지 않은 상황이다.

박사가 자신의 죽음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도 아내와 자신의 환자들과의 관계성이 모호했기 때문이고 그들을 진심으로 들여다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콜을 통해 자신의 주변 사람들과 아내와 환자들을 이해하고 그들과의 관계에 자신이 소홀했음을 인식하자 비로소 마지막 인사를 할 수 있는 마음이 생긴다. 생전에 하지 못한 것들에 대한 미련과 집착을 버리고 마음을 비우게 된 것이다.

 

그에게 필요했던 건 죽음을 정리할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건 다른 영혼들에게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단지 정리하는 과정과 방법이 달랐을 뿐.

 

 


 

21세기를 코 앞에 둔 1999년.

많은 것들이.
순식간에 뒤바뀔 미래가 기다리고 있는 그 순간.
사람들은 마지막까지 흥청망청 돈과 시간을 흘려보낸다.

 

그 와중에도

 

콜과 단 둘이 사는 콜의 엄마는 두 개의 직업을 가져도 먹고 살기 빠듯한 삶을 버텨내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 곳에서는 전혀 다른 삶을 시작하는 커플들이 있다.

 

 

 

 

 

 

 

다이아몬드에 눈이 멀어 약혼자에게 무리한 반지를 요구하는 여자는 중동인이다.

그 다이아반지를 파는 것은 박사의 아내가 하는 일이다.

그리고 비싼 반지에 홀딱 반하게 하는 건 반지 속에 얽혀 있는 반지의 이야기.

그녀는 과거를 이야기로 현물에 가치를 담아 비싸게 판다.

전형적인 미국 자본주의 중산층들이다.

 

 

1999년은 혼돈의 시작을 알리는 시기였다.

그리고 밀레니엄이라는 새로운 포장으로 그 혼돈을 받아들이게 하는 것에 실패한 시기이기도 하다.

종말이란 단어로 현실을 외면하고 왜곡하며 공포를 뿌렸던 시기.

그러나 다른 한 편으로 더 많은 자본을 더욱 크게 부풀릴 것이라는 기대감에 벅차 있던 시기.

 

한 세기가 저물고

새로운 세기가 문을 열기 직전이다.

 

그 문을 열기 위해 필요한 건 무엇인지 말하고 있는 영화다.

 

과거를 잊으라는 게 아니라 해결하라는 것이고

외면하라는 게 아니라 직시하라는 것이며

왜곡하라는 게 아니라 이해하라는 것이다.

 

새로운 공간이 시작되는 것에 대하여.

과거의 공간이 끝난 것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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