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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with ... 책

003. 나를 고민하게 될 때, 나를 위한 현대철학 사용법

by story-opener 2020. 9. 7.

 

 

 

 

 

 

 

 

 

나를 위한 현대 철학 사용법 (자유를 얻는 방법)

 

 

교양 (자유로워지기 위한 기술)

철학 (사고, 언어, 논리)

 

 


그것의 속박에서 벗어나려면 그것을 소유하라.
소유한다는 것은 권한을 갖는다는 뜻이다.


속박이란 설득되지 않는 에러이다.

 

 

 

 

 

 

 

 

 

 

 

 

 

 

1. 나를 속박하는 것은 무엇인가?

 

언어
가치(도덕:내제화된 규범)
사회(살려둘 수 없지만 계속 살게 하는 것)

 

 

 

2. 나는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가!

=> 나는 어떤 이야기의 세계를 만들기 위해 싸우고 있는가!


어디=세계
어떻게=이야기(삶의 지침)->나의 이야기/시대,사회의 이야기
살다=싸우다

 

이야기의 목표

무언가를 얻는다-> 얻지 못할 경우-> 피로함

무언가에서 벗어난다-> 벗어나지 못할 경우-> 괴로움-> 속박-> 절망-> 비참함

 

속박(자유를 잃어버린 상태)

1. 일반적인 노력으로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되는 상황.
2. 시간이 흘러도 해결되지 않을거라는 생각.

 

절망(무엇을 해도 소용없는 상태)

이야기의 목표 달성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지만
그 이야기를 포기할 수 없는 상태.

cf) 빚을 갚을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돈 먹는 카페를 접을 수 없는 상태.

 

비참함

버릴 수 없는 이야기에 도달하면서도
그 이야기를 결코 달성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마지못해 살아가는 게으름 때문에 발생하는 감정.

 

 

 

3. 나란 무엇인가

속박(자유를 잃어버린 상태)에서 자유를 얻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무기

 

 

 

4. 나에게 타자란 무엇인가


타자는 단순한 '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며,
초월적 나의 존재를 인정함으로써 나를 강하게 지탱해주는 유일한 존재.


제도를 바꾸는 힘은 폭력도, 권력도, 경제력도 아니다.
타자를 부르고 타자의 부름에 응답하기, 타자를 환대함으로써 자신이 있을 자리를 만들어 내는 것 자체가 제도를 바꾼다.
우리는 이미 준비된 사회에서 있을 자리를 찾는 것이 아니다.
있을 자리는 스스로 만들어야만 한다.
이것이 사회의 소유이며 사회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방법이다.

 

또 있을 자리란 '나'가 자유로워지기 위한 장소이며,
그곳을 기점으로 삼아 언어, 가치, 이야기, 세계를 만들어 나가고
이들의 속박에서 벗어나기 위한 장소이다.


(....)


그리고 우리는 있을 자리를 만드는게 힘들다고 느낄 때 또는 올바른 자리에 있지 않다고 느낄 때 싸워야만 한다.
이는 타자와 맺는 관계의 문제이며 이미 존재하는 유대의 문제라서 '나'의 내부에서만 처리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또 '있을 자리가 없어도 좋다'고 생각할 때는 '죽을 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이 또한 '자리'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5. 산다, 죽는다는 것의 의미


나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는 방법

 

'나'는 올바르려고 하는 자유를 침해하는 타자와 맺는 관계나 유대는 버리고 다른 관계를 구축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여기서 타자의 이해 불가능성을 인식하고 부름에 응답하기를 포기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따라서 싸움이란 타자에 맞서 싸우는 것이면서 타자와 같이 싸우는 것이다.

이는 타자에게 '나'를 떠맡기면서도 타자의 가치와 '나'의 가치를 충돌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자리 만들기이다.


이는 싸움이 외부에서 일어나든 내부에서 일어나든 같은 것이다.


우리는 올바른 자리를 만들 수도 있고, 지금 자신이 있는 자리를 올바른 것으로 바꿀 수도 있다.
어떤 경우든 '나'와 타자가 모두 조금씩 변한다. (...) 올바른 자리를 만든다는 것은 있을 자리를 만든다는 것 자체이며
지금 있는 자리를 올바르게 바꾼다는 것은 그곳에서 배제되지 않게끔 한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올바르지 않은 방향으로 지향할 수 없는 존재다.
올바르지 않은 방향으로 변하는 것은 게으르게 살기 때문이며
있을 자리를 만들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즉 타자와 싸운다는 것은 타자와 더불어 올바르게 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나와 타자가 더불어 올바르게 변한다는 것은 세계와 사회가 더 올바르게 변해 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타자와 더불어 싸우는 것으로만 올바르게 존재할 수 있다.

부단한 노력을 통해 불완전한 논리회로의 성능을 온전히 활용해 늘 논리를 재구축하려고 노력하는 것.

이것이 싸움이다.
싸움이 있는 곳에는 진동이 생긴다.

그 진동은 공진(共振)이 되고 전파되면서 불완전성을 완만하게 보완할 수 있다.

 

죽는다는 것 역시 나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는 방법이 죽음 외에는 없기 때문에 행하는 것이 되었을 때 올바른 죽음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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