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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with ... 책

002. 부조리한 세계의 무의미한 전쟁, 제5도살장

by story-opener 2020. 9. 4.

 

 

 

 

 

커트 보니것

1969년 作

 

 

 

p.164 ~165


미국은 지구 상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지만 그 국민은 대체로 가난하며, 가난한 미국인은 자신을 미워하라고 종용받는다.
미국의 유머 작가 킨 허버드의 말을 이용하자면, "가난하다는 것은 창피한 일이 아니지만, 차라리 창피한 게 나을 것이다."
사실 미국은 가난한 자들의 나라인데도, 미국인이 가난한 것은 범죄다.


다른 모든 나라에는 비록 가난하지만

매우 지혜롭고 덕이 높아 권력과 금력이 있는 누구보다도 존경받는 사람들에 관한 민간전승이 있다.
미국의 가난한 사람들은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을 조롱하고, 자기보다 나은 사람을 찬양한다.


식당이나 술집 가운데도 가장 초라한 곳 - 보통 가난한 사람이 직접 운영하는 경우가 많은데 - 에는 벽에 이런 잔혹한 질문이 걸려 있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 "네가 그렇게 똑똑하면 왜 부자가 아닌가?" 또 아이 손바닥만 한 성조기도 있을 텐데, 이것은 막대사탕의 막대에 달려
금전등록기 위에서 나부끼고 있을 것이다.


미국인은 다른 모든 곳의 인간과 마찬가지로 명백히 사실이 아닌 많은 것을 믿고 있다.
가장 파괴적인 거짓은 미국인이 돈을 벌기가 아주 쉽다는 것이다.

그들은 실제로는 돈을 버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며,
그래서 돈이 없는 사람들은 자신을 탓하고 탓하고 또 탓한다.

이런 내적인 비난은 부유하고 강한 자들에게는 보물이 되어 왔다.
그 덕분에 그들은 예를 들어 나폴레옹 시대 이후 다른 어떤 지배계급보다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공적으로나 사적으로 해야 할 일이 적었다. 많은 새로운 것이 미국에서 나왔다.


이 가운데 가장 눌라운 것, 선례가 없는 것은 위엄을 잃은 가난한 사람들의 무리다.

그들은 자신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서로 사랑하지 않는다.
이 점을 이해하면 독일 수용소에 수용된 미국 징집병들이 하는 불쾌한 행동의 수수께끼가 풀린다.

 

 

 

 

point.

화자와 주인공이 얽히고 섥혀있다. 그들은 하나인 듯 하나가 아닌 별개로 등장한다.
화자는 주인공이 말하는 내용을 그대로 전달할 뿐이다.

아이러니한 상황을 수용하는 입장에서 주인공의 이야기를 논하는 일 따윈 없다.
그저 담담하게 전달할 뿐이다.

 

 

 

 

 

 

 

p.274~275


왜 빌리는 이렇게 두서없이 이야기를 하는 것일까?
그것은 무엇보다도 빌리가 시간에서 풀려나 자기 의지와 관계없이 시간 여행을 하여

과거, 현재, 미래를 정신없이 오가기 때문이다.

어쨌든 빌리 자신은 그렇게 믿고 있고, 화자는 어디까지나 빌리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입장일 뿐이기 때문에

그 주장의 신빙성에 대해서는 가타부타 말이 없다.

 

사실 화자는 시간 여행에 대한 주장만이 아니라, 앞서 언급했던 전쟁에 대한 태도를 포함하여 빌리의 여러 생각이나

행동에 대해서도 직접적인 평가를 하지 않고 입을 다물고 있다.

이 때문에 독자들은 관습적인 이야기를 읽을 때와 달리 빌리의 말이나 행동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곤혹스러운 입장에 처하게 된다.

 

왜 화자는 굳이 이런 인물을 이야기의 주인공이자 이야기를 이끄는 사람으로 내세웠던 것일까?
아무래도 바로 이 점이 화자가 이 작품을 쓰기까지 오랜 세월 고민한 핵심적인 부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
이런 주인공 설정은 드레스덴 이야기 전체의 핵심과 연결되어 있는 듯하다.
1장에 나오는 대로 드레스덴 이야기의 핵심은 드레스덴 폭격과 그로 인한 무고한 생명의 희생보다도

그 모든 일이 끝난 뒤에 벌어진 에드거 더비의 뜻밖의 처형이다.


"내 생각에 책의 클라이맥스는 가엾은 우리 에드거 더비의 처형이 될 것 같아. (...) 엄청난 아이러니잖아.
도시 전체가 잿더미가 되고,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이 죽임을 당했어.
그런데 미국인 보병 한 명이 폐허 속에서 찻주전자를 가져갔다는 이유로 체포되었어.
그런 뒤에 정식 재판에 회부되었다가 총살대에게 처형됐잖아." (p.15~16)

 

여기에서 드레스덴 폭격이나 그로 인한 무고한 인명의 희생과 그 비극적인 면에 맞춰진 것이 아니라
그 모든 일이 끝난 뒤 벌어진 에드거 더비의 죽음,

그리고 그 아이러니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화자가 이 아이러니에 대응하려 하면서, 주인공의 설정도 달라지고

반전이라는 생각 자체도 전쟁의 비극에 대한 진지한 반대와는 다른 길로 흘러가게 되기 때문이다.

에드거 더비가 죽을 때 빌리는 어디 있었을까?

 

빌리는 더비가 죽으면 묻으려고 삽을 든 채 에드거 더비를 보고 있었다.

에드거 더비의 처형 뒤 곧 전쟁은 완전히 끝나고 빌리는 귀국 했다.
얼마 후 빌리는 자기 발로 정신병원에 들어가는 데, 그의 정신이 무너진 이유는 소설에서 직접적으로 언급되지 않는다.
그러나 에드거 더비의 처형이 이야기의 클라이맥스라고 한다면,

그리고 화자가 굳이 빌리를 이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내세웠다면,

빌리의 정신이 무너진 것은 무엇보다도 더비의 죽음 때문이라고 보아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따라서 '제5도살장'은 다른 무엇보다도 등장인물 가운데 가장 무력한,

가장 살아남을 가능성이 적었던 빌리가 결국 살아남아,

등장인물 가운데 가장 훌륭한,

가장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았던 에드거 더비의 어처구니없는 죽음이라는 부조리와 아이러니 때문에 무너지는,

또 동시에 그 부조리를 견디고 받아들이는 - 트랄 파마도 어의 철학으로 -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1980년 을유문화사에서 출간된 제5도살장의 표지.

 

 

 


 

Thinking

 

아마 빌리가 살아남은 가장 큰 이유는 그가 부자였다는 사실일지도 모른다.
제대로 말한다면 그가 부잣집 사위였다는 점이다.

부조리를 받아들이고 수용하는 것.
그게 삶이라고 말하는 작가의 생각에 동의하기도 하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아, 여러분은 폭탄 걱정은 할 필요가 없을 겁니다. 드레스덴은 국제법으로 보호받는 비무장 도시거든요.
방비를 하지도 않고, 군수산업도 없고, 이렇다 할 규모의 병력이 모여 있지도 않습니다." p.184

 

이 부분을 읽으면서 부조리가 무엇인지 또다시 생각하게 된다.
보호구역으로 지정된 곳이 파괴되는 아이러니는 비단 살 가망성이 낮은 이가 살아 돌아온 아이러니보다 더

설득력이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 책은 제5도살장이 실제로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로도 아이러니 일지 모른다.


가장 큰 아이러니는 사람들의 시체가 뿌리가 되고
그 뿌리가 20달러짜리 잎이 붙어 있는 나무를 만들며 나무의 열매는 국채라고 부른다는 사실이다.

그가 말하고 싶어 하는 가장 핵심적인 아이러니는 어쩌면 바로 그 나무일지도 모른다.

 

 

 

드레스덴 공습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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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레스덴 공습

날짜 : 1945년 2월 13일 - 1945년 2월 15일

장소 : 독일 드레스덴

결과 :

연합군의 승리
드레스덴의 주요 명소 파괴
도시 공습을 둘러싼 윤리 문제 대두
독일군에 심각한 타격

 

1890년대의 드레스덴의 모습을 찍은 사진. 
드레스덴의 대표적인 명소인 드레스덴 성당, 아우구스투스 다리, 그리고 가톨릭 궁정 교회가 보인다.

 

1910년 마을회관에서 바라본 알츠 타트 (Altstadt →구시가)의 전경

 


 

 

전체 도시 건물의 90퍼센트가 파괴되었다.

 

 

 


 

화장하기 전의 시체들을 찍은 사진 

 

 

 

방공호에서 발견된 새까맣게 타버린 여자의 시체

 

“ 도저히 묘사할 수가 없다! 폭발하고 또 폭발. 제일 암울했던 악몽보다 더 나빠서 믿을 수가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끔찍하게 불에 타고 부상을 당했다. 점점 호흡하기가 힘들어졌다.
밖은 어두웠고 우리들은 상상조차 못 할 공포감에 이 지하 창고를 빠져나가려 애썼다.
이미 죽었거나 죽어가는 사람들은 짓밟혔고, 짐들은 버려지거나 우리들 손 밖을 빠져나가 구출하는 사람들이 낚아채갔다.
우리 쌍둥이 아기들은 바구니 속에 넣어 젖은 옷들을 그 위에 덮어 엄마가 손으로 움켜쥐었고, 우리는 뒷사람들에게 밀려 위층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거리가 불에 타는 모습과 떨어지는 잔해, 끔찍한 화염 폭풍을 지켜보았다. 우리 엄마는 물통에서 찾아낸 젖은 담요와 코트로 우리를 감쌌다.
우리는 끔찍한 것들을 보았다.
조그만 아이 크기만큼 타버린 어른 시체, 팔다리 조각들, 죽은 사람들, 불타서 죽은 일가족들, 불타면서 저편으로 달려가고 있는 사람들, 피난민 시체들로 가득 들어있는 불탄 사륜마차, 죽은 구조원들과 병사들,
자기 자식과 가족을 부르거나 찾는 수많은 사람들, 그리고 불이 어디든 났다는 것, 어디든지 불났다는 것,
그리고 화염 폭풍의 뜨거운 바람이 불타는 집에서 탈출해 나왔다가 다시 돌아가려는 사람에게 불어닥치는 모든 순간.
나는 이런 끔찍하고 세세한 것들을 잊을 수 없다. 절대로 잊을 수가 없다. ”

- 생존자 중 한 명인 로타르 메츠거의 증언

 

 

“ 내 왼쪽에서 갑자기 한 여자가 나타났다. 나는 그 여자를 제대로 볼 수 없었지만, 앞으로 절대로 잊지 못할 것이다.
그녀는 팔에다 무언가를 들고 있었다. 그것은 아기였다. 그녀는 달리다가 넘어졌고, 그 아이는 그대로 아치 문 안의 불속으로 날아갔다.
갑자기 나는 내 오른쪽에서 다시 사람들을 보았다. 그들은 겁에 질렸고 손짓으로 무언가를 말하려고 했으며,
그다음? 나는 공포를 느끼고 경악했다? 나는 그들이 스스로 순서대로 하나씩 쓰러지는 것을 보았다.
(나는 훗날 그 불쌍한 사람들이 산소 부족으로 죽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졸도했고 곧 불에 타서 재로 변해버렸다.
나는 때때로 미치도록 두려울 적마다 다음과 같은 간단한 문장을 반복하고 새뇌 긴다: "나는 불에 타서 죽지 않았다".
나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지 모른다. 나는 오직 한 가지만을 안다 - 나 스스로 타 죽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

- 생존자인 마거렛 프레 예의 증언

 

 

드레스덴 폭격 (영어: bombing of Dresden, 독일어: Luftangriffe auf Dresden)은
제2차 세계 대전의 유럽 전선에서 마지막 몇 달간 미국과 영국이 독일 작센 주의 주도인 드레스덴 시를 대규모 폭격한 사건이다.
1945년 2월 13일에서 15일까지 네 번의 공습에서 영국 공군 (RAF) 소속 중폭격기 722대와 미국 육군 항공대 (USAAF) 소속 중폭격기 527대가 드레스덴 시에 3,900톤 이상의 고폭탄 및 소이탄을 투하했다.

 

폭격과 그로 인해 발생한 화염 폭풍으로 드레스덴 도심의 40 km²가 파괴되었으며, 22,700명 에서 25,000명 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 육군 항공대의 공습은 이후로도 세 번 더 이어졌다.


각각 3월 2일과 4월 17일에 있던 두 번의 공습은 철도 조차장을, 4월 17일에 있던 적은 규모의 공습은 산업 지역을 표적으로 삼았다. 공격이 벌어진 직후의 반응과 종전 후 공격이 정당 했는지에 관한 논의는 드레스덴 폭격이 전쟁에 관한 도덕적 '유명 소송'의 일례가 되기에 이르렀다.
1953년 미국 공군 보고서는 이 작전을 독일의 전쟁 총력을 지원하는 110개의 공장과 50,000여 명의 노동자를 수용하는,
독일의 군사 및 산업시설 표적 (주요 철도 교통시설 및 통신센터로 주장)에 대한 정당한 폭격이라고 옹호했다.

 

일부 연구자들은 다리를 폭격한 점과 같이 통신 기반시설 전부를 표적으로 삼은 것은 아니며,
도심 외부의 대규모 산업 구역을 삼은 것도 역시 아니라고 주장했다.

 

폭격을 비판하는 측에서는 '엘베 강의 피렌체 (Elbflorenz)'라고도 언급되던 드레스덴은 군사적으로 중요성이 크지 않거나 전혀 없는 문화명소였으며, 드레스덴 폭격은 무분별한 지역 폭격이고 전과에 상응하는 비례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주장되는 바에 따른 사망자수의 큰 차이는 논란을 더욱 부채질했다.
1945년 3월 나치 정권은 드레스덴 공습의 사상자 수를 200,000명으로 조작하여 언론에 발행하도록 명령했고,
추정된 통계에 따라 사망자수가 500,000명까지 늘기도 한다. [10] 당시 시 당국은 희생자를 25,000명에 불과한 것으로 추정했는데,
2010년 시의회가 의뢰한 조사를 비롯한 여러 차후 조사가 이를 지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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