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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with ... 영화

남아 있는 나날 (1994)

by story-opener 2020. 9. 6.

 

The Remains of the Day

 

로맨스/멜로
영국, 미국
1994.04.16 개봉138분,
12세이상관람가
(감독) 제임스 아이보리
(주연) 안소니 홉킨스, 엠마 톰슨

 

 

영국의 달링턴가는 모두가 알아주는 유명한 귀족 집안이다. 달링턴 가의 집사 스티븐슨(안소니 홉킨스)은 집사장이라는 신분을 넘어서서 달링턴가의 충복이다. 그가 하는 일은 모두 달링턴가를 위한 것이 먼저였다. 달링턴가가 최우선인 그는 하녀장 캔튼(엠마 톰슨)에게 사랑을 느끼지만 그것 역시 한 순간의 감정일 뿐이라고 치부하며 자신의 사랑을 표현하지 않는다.

제 2차 세계대전까지도 외교의 중요한 역할을 하던 달링턴 저택이 달링턴이 나치 지지자로 지목되면서 몰락한다. 어쩔 수 없이 달링턴가는 미국의 정치인 손으로 넘어가지만 스트븐슨은 달링턴가를 지키려 한다. 새 하녀장으로 캔튼을 부르지만 손녀를 키워야 한다며 캔튼이 그의 제의를 거절하자 그제서야 스트븐슨은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며 후회하는데...

 

 

 

 

 

시대적 배경 : 1936년 ~ 1956년

 

1차세계대전에서 패배한 독일은 베르사이유조약으로 강요된 막대한 배상금지급 등
전쟁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을 일방적으로 배상할 상황에 놓이자 1930년대 히틀러의 외교는 새로운 전쟁을 모색해가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었다.

 

1933년 베르사이유조약에 반발한 독일과 일본의 국제 연맹 탈퇴

 

1935년 독일의 군비 5배확장으로 세계 제일 강국화

1920~1935년까지 국제 연맹의 감독하에 프랑스의 종속 정책에 귀속되어 있던
자르공업지역의 모든 정당은 독일로의 귀환 문제를 놓고 주민투표 실시후 91%의 지지율로 독일에 복귀

 

1936년 비무장지대인 라인란트 재무장(베르사이유조약 및 로카르노 조약 위반), 방공협정(독.일.이 3국 결합)


1938년 독일은 오스트리아 강제병합

체코슬로바키아 위기 조성으로 뮌헨회담(독,영,이,프)을 개최 후
독일인 인구가 가장 많은 체코의 주테텐지역을 독일에게 양도(버림받은 체코)
체코에 대한 독일의 불가침조약 합의.

 

1939년 독일의 체코 강제병합(뮌헨회담 조약파기).

1차세계대전 후 국제 연맹이 관리하는 독일인 거주 자유도시 단치히 회수 요구 (민족주의 강조)
발트해로 이어진 폴란드령에 의해 독일 본토와 단절된 동프로이센(폴란드 회랑) - (치외법권 도로 건설 요구)

 

1939년 폴란드 침공으로 2차세계대전으로 확산.

 

 


벼랑 끝 외교를 취하던 독일을 상대로
영국 체임벌린 수상을 비롯한 유럽은 강경파 처칠이 등장하기 전까지
유화론자(베르사이유조약에 의한 전쟁배상금 지급은 독일을 벼랑 끝으로 몰아 결국 전쟁을
일으킬 수도 있으니 독일을 달래야 한다는 입장)들 사이에서 상황을 무마시키기에 바빴다.

 

 


등장인물

 

 

 

1. 영국 달링턴 경(현실과 동떨어진 이상주의자) - 거시적 세상의 희생양

 

1차세계대전에서 친구가 된 독일장교가 베르사이유조약으로 재산을 잃고 직장도 얻을 수 없게 되자 결국 자살하게 된다.

그 충격에 독일을 도울 의무감이 생긴 그는 유럽의 유화론자들 편에 서게 되고
1936년경 그는 독일에게 기회를 줘야 한다는 주장을 공론화 하기위해 가문의 명예를 걸고
미국의 반대를 뒤로한 채 영국 수상과 프랑스를 설득하며 독일을 돕지만
결국 독일에게 이용만 당하고 오히려 영국을 전쟁에 끌어들인 반역자 나치 지지자로 내몰린다.


언론이 자신의 진정성을 모독했다고 생각한 그는 명예훼손으로 소송을 하지만 결국 폐소하며 명성과 명예를 비롯한 가문의 재력까지 모든 걸 잃게 된다.

그런 와중에도 간간이 드러나는 권력층과 비권력층의 입장은 그가 집사장인 스티븐스를 자신의 충견으로 바라보는 행동을 통해 나타난다.

본질적으로 권력계층과 가까운 거리에 있는 비권력층은 둘 중 하나로 구분된다.
충직한 명견이거나 사냥에 쓸모 있는 맹견이다.

그러나 그 사냥의 대상은 방해가 되는 권력계층이거나 희생양이 될 아마추어집단이라는 사실을 달링턴 경의 몰락을 통해 보여준다.

 

 

 

 

2. 집사장 스티븐스(이상주의자 밑에 빌붙어 있는 망상가) - 미시적 세상의 먹이


그는 비권력층 안에서 달링턴 경이라고 볼 수 있다.

스티븐스는 자신이 모시는 주인의 명망과 도덕성만 믿고 그를 전적으로 따른다.
도덕적인 주인이 곧 자신이기에 그를 의심하는 건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정작 자신이 물리적으로 관리하는 성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지 못하지만
그 성에 있다는 사실을 현실로 착각하고 마치 자신이 주인과 같은 위치라고 착각하며 살고 있다.

 

달링턴 경도 그가 이 성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완전히 알지는 못하더라도 어느정도 인지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외부 손님들을 통해 그건 착각이었음을 확인하게 된다.

 

아버지의 뜻에 따라 집사의 핵심은 위엄이라는 것에 집착하며 사는 스티븐스는 정작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도 마치 자신의 위엄을 지켜야 한다는 듯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며 억지로 일에 매달리려하지만 충격을 감당하기 어려운듯 정신줄을 놓는 표정으로 돌아다닌다.

 

총무를 맡고 있는 미스 캔튼의 도발적이고 적극적인 행동에 마음이 끌리던 그는 생각지 않은 그녀의 결혼 소식에서도 감정을 드러내기보다 그녀에게 상처를 주는 아이러니한 행동을 하게 된다.

 

 

 

 

 

3. 미스 캔튼 (성의 살림과 하녀들을 관리하는 총무)

 

집사장 스티븐스가 얼마나 가식적이며 사회성이 결여된 인물인지 여실히 드러내게 하는 캐릭터다.
그와동시에 시스템 안에서 여자의 능력보다 안정된 남자의 직장이 여자의 인생을 결정짓는다는 걸 잘 보여주고 있다.

젊어서는 안정된 집사장과 결혼하고 싶었지만 사회관계성이 부족한 집사장에게 상처만 받게 되자 결국 하숙집을 함께 운영하자고 꼬득이는 옛 동료와 결혼을 선택한다.

 

그리고 나이를 먹은 후에는 앞으로 태어날 손녀때문에라도 새로운 일은 딸의 집이 있는 그 지역에서 구하겠다며 자신의 가족에게 충실하고자 애쓴다. 그녀의 눈에 스티븐스는 최고의 신랑감이었다.
봉건주의에서 자본주의로 넘어선 시대라지만 엄연히 영국문화는 성주의 문화가 살아있던 시절이다.
그런 시절 평민들이 먹고 살 수 있는 일자리는 여전히 농노이거나 하인이거나 상거래 업자로 나서는 것 뿐이다.

시대마다 소득계층의 명칭이 달라질뿐 그 역할은 다르지 않다는 게 현실일 따름이다.

아이러니하게 다른 어떤 캐릭터도아닌 미스 캔튼이 여성의 능력과 무관한 그런 현실을 은연중에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집사장이라는 가장 안정적이고 품위있는 직업은 그녀가 스티븐스와 결혼을 결심하기에 더없이 좋은 조건이다.
그러나 바로 그 집사장이라는 직업은 많은 하녀들과의 접촉을 의미하고 있으니 숱한 연문을 나을 수도 있는 단점을 가지고 있지만

연애보다 업무에 대한 집착이 큰 스티븐스를 보며, 예쁜 여자를 두려워하고 경계하는 그의 모습에서

결혼 후 바람끼때문에 근심걱정 할 일은 없을 거란 믿음도 있었을 것이다.

 

 

 

 

결혼에 대해 부정적이던 스티븐스가 자기와 결혼하길 바라는 마음을 소심하게 전달하지만

결국 관계에 서툰 스티븐스에게 상처만 받고 다른 남자를 선택하게 된다.

 

 

 

 


 

 

사냥(거시적 세상)과 낚시(미시적 세상)

 

과거를 회상하는 첫 장면은 전혀 사냥을 하지 않는 달링턴 경이 손님들을 위한 사냥모임을 개최한 것으로 시작한다.

등장인물 중 이 사냥 모임에서 말을 타지 않은 사람은 두 사람 이다.

 

 

 

사냥의 본질과 원리를 모르면서 전쟁을 막기위해 사냥을 주최한 성주 달링턴 경과

말에 올라 탄 손님을 시중하느라 내내 팔을 뻗어 음료를 대기시키는 집사장 스티븐스다.

 

거시적인 시스템의 먹이감은 바로 이 두 사람이라는 걸 잘 보여주고 있다.

독일이 경제를 해소하기 위해 베르사이유조약 이후 빼앗긴 지역들을 다시 회수하고 더 나아가 다시 확장시키기 위해서는 자신들의 내막을 포장 해줄 무조건적 지지자가 필요했고, 그 먹이감으로 달링턴 경이 제격이었다.

 

고귀한 명예 앞에 정치와 경제는 탐욕이라고 생각하며 세상의 변화에 문외한 존재가 돈까지 많으니 얼마나 훌륭한 먹이감인가.


무조건적인 또다른 지지자가 있으니 주인을 빼다박은 집사장 스티븐스다.
자신이 모시는 주인은 명예를 중시여기며 도덕적이고 고귀한 존재라는 것에 한치의 의심도 없이 주인을 믿고 따르는 종교적인 존재다.

그런 주인을 믿는 자신도 다를바 없다는 걸 주인을 통해 대리만족하는 존재다.

 

그런 스티븐스의 모습을 당연히 여기며 자신이 직접 하기에는 민망하거나 내키지 않는 일들은 대부분 스티븐스를 통해 해결하려 하는 건 당연한 결과다. 그 예로 달링턴 경은 스티븐스에게 아둔한 일을 지시한다.


그에게는 친구의 아들이자 자식처럼 여기는 다 큰 청년(카디날)이 결혼을 앞두고 있다며 그에게 첫날밤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 성적인 문제를 설명해줘야 할텐데 자기가 얘기하기보다 스티븐스가 설명하는 게 더 어울린다며 스티븐스에게 넘긴다.

 

자신은 고귀한 존재이기때문에 성적인 문제같은 저속한 얘기는 대충 자연의 섭리를 들먹이며 꽃과 새의 관계를 늘어 놓으며 그럴싸하게 집사장이 얘기할 일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달링턴 경이 아들처럼 생각하는 카디날은 그가 생각하는 것처럼 세상물정 모르는 사회 초년생이 아니었다.

기자로 활동하며 나름 세상이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달링턴 경의 비밀회의 서기로 당당히 모임에 참석하게 된다.
달링턴 경을 미끼로 국제사회가 비밀스럽게 꾸미는 일이 뭔지 알아내기 위해 그를 이용하는 건 오히려 카디날이었던 것이다.

그부분에서 카디날은 자신에게 어줍잖게 자연의 섭리를 들먹이는 스티븐스에게 이렇게 말한다.

 

꽃과 새는 잘 모르지만 물고기는 좋아한다고.

낚시를 즐긴다고.

 

카디날이 말하는 낚시는 사냥보다 미시적인 접근을 말하는 것이지만 먹이감과 희생양에 대한 부분은 사냥과 포커스가 일치하는 부분이다.

 

 

 

 

 

두 번의 죽음

 

첫 번째 죽음은 집사경력54년의 베테랑 집사인 아버지의 죽음이다.

자신이 집사장이 되는 삶의 토대이자 집사의 핵심은 위엄이라며 마지막까지 호령을 내렸던
그의 아버지는 고령에도 불구하고 집사일을 보려다 결국 뇌사로 죽음을 맞이한다.
그러나 스티븐스는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도 감정을 드러내지 못한다.


두 번째 죽음은 전쟁으로 목숨을 잃은 젊은 청년의 죽음이다.

종교적 지주인 주인에 대한 믿음이 무너지는 계기가 된 이 죽음은 스티븐스 일생의 최초이자 마지막이 될 외부세상의 죽음이다.

여행길에 묵게 된 곳이 전쟁중에 덩케르크에서 죽게 된 한 젊은이의 방이었고
그 전쟁은 자신의 주인이었던 달링턴이 적극적으로 옹호하던 독일에 의해 시작된 2차대전이었다.
그렇게 믿어 의심치않던 주인의 행보가 결국 젊은이의 죽음을 불러일으켰다는 사실에 믿음이 된 종교 같은 주인의 세상이 무너지는 순간이다.

 

 

 

각자의 충격

 

주인 - 세상의 변화에 놀아난 자신을 보게 되며 무너지는 가문(조직)의 파산에 충격을 받는다.
집사 - 아버지의 죽음/미스 캔튼의 결혼/돌아오지 않는 미스 캔튼(자신의 잘못을 되돌릴 수 없게 된 현실직시)


재미있는 것은 이 영화는 주인과 집사 모두 세상을 모르고 살았던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주인은 거시적인 세상에서 정치와 경제를 몰랐고
집사는 미시적인 세상에서 정치와 경제를 몰랐다.


주인은 자신의 믿음이 이용되기만 하고 주변 모든 이들이 떠나게 되며 몰락하고
집사는 자신의 정신적 지주인 아버지의 죽음과 마음에 담고 있던 총무인 그녀의 결혼 소식에
충격을 받지만 20년이 지나 다시 그녀를 돌아오게 할 수 있다는 희망으로 찾아간다.
결국 그녀는 자신의 남편을 사랑하고 있다는 고백을 듣게 되고 또다시 충격을 받는다.


주인이 믿었던 독일은 자신들의 경제적 상황을 타개하는 방법으로
영국을 이용해 잃어버린 땅과 독일 국민들을 되찾는 것에서 다시 시작하려 한다는 걸 몰랐다.

주인이 생각한 정치인은 무력만이 모든 해결책이고 탐욕에 눈 뒤집힌 저급한 정치꾼으로 치부한다.

집사의 늙은 아버지는 54년 집사경력도 무색하다. 그는 갈 곳이 없어 아들의 주인댁에 들어오고 결국 뇌사로 죽는다.

 

그러나 모든 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렇게 오늘도 주인을 향한 맹신과 충성으로 그들의 모임을 서브한다.

 

 

 

 


 

 

집사인 스티븐스도 도덕적인 주인이 하는 일이니 모두 다 좋은 일이라는 무조건적인 맹신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가 처음으로 세상밖을 향해 나선 순간 자신이 있던 그곳이 얼마나 협소하고 주인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일으켰는지 목격하게 되지만.. 슬픈 현실은, 결국 다시 새장 속으로 돌아온다는 사실이다.

 

 


 

 


 

 

영화는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거시적인 세상과 미시적인 세상을 동시에 이야기 하고 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우리의 삶은 계속된다.
전쟁 속에서도 사랑을 하며,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미래를 꿈꾸는 건 멈추지 않는다.
그러나 전쟁에 휩싸여 있는 우리에겐 죽느냐 죽지 않느냐의 기로 뿐이라는 걸 막상 당하지 않으면 알지 못한다.

 

지금도 다르지 않다.

 

 

 


 

 

그저 달라진 건 주인이 바뀔 뿐이다.

 

 


 

 

 

이 성의 새로운 주인으로 들어오며 스티븐스에게도 새로운 주인이 된 루이스는 과거 미국 펜실베니아의 젊은 하원의원이던 시절 이 성에서 진행한 비밀회의자리에 참석했던 인물이다.

(그는 외교전문 정치인으로 나오며 그의 재력은 1930년대 중반 미국에서 각광받고 있는 포목상보다도 화장품회사 유산 상속에서 비롯된 것이다.) 성을 처음 접한 그는 이 성에 매료되기도 했던 인물로 결국 새로운 성의 주인이 될 거라는 걸 암시한걸지도 모른다.

 

상징적으로도 그 성은 영국의 권세를 의미하고 다음 세력인 미국이 세계를 재패했다는 걸 암시하니 성주가 루이스로 정해지는 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단지 허름해진 이 성을 다시 채우는 주인이 나이를 먹어 정계를 은퇴한 루이스와 과거 달링턴의 집사였던 늙은 스티븐스라는 점에서 또 다시 이 곳은 고립된 세상이 되고 있다는 걸 암시하기도 한다.


마지막 엔딩은 성 안으로 들어온 비둘기를 새로 입주한 주인이
다시 밖으로 날려 보내고 그걸 바라본 스티븐스는 새장을 닮은 창문을 굳게 닫는다.


그리고 마치 날아가는 비둘기를 바라보는 듯 하늘을 바라보는 스티브스의 눈은 자포자기한 사람처럼 보인다.

 

그리고 멀리 날아가는 비둘기의 시선으로 바라본 마지막 장면은
세상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집사 스티븐스의 모습에서 끝없이 펼쳐진 녹지대 한 가운데
덩그러니 놓여진 성의 모습으로 확장되고 곧이어 구름에 어두워지는 성을 뒤로하며 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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