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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and ... 여자

영화 차이나타운 (2015), 자신의 쓸모를 증명해야 하는 여자

by story-opener 2020. 12. 10.

 

 

Coin Locker Girl

 

범죄/드라마
한국
2015.04.29 개봉 110분,
청소년 관람 불가

 

감독) 한준희
주연) 김혜수, 김고은

 

 

 

 

 

 

지하철 보관함 10번에 버려져 이름이 ‘일영’(김고은)인 아이. 아이는 오직 쓸모 있는 자만이 살아남는 차이나타운에서 ‘엄마’(김혜수)라 불리는 여자를 만난다.


엄마는 일영을 비롯해 자신의 필요에 의해 아이들을 거둬들이고 식구를 만들어 차이나타운을 지배한다.

돈이 되는 일이라면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는 엄마가 일영에게는 유일하게 돌아갈 집이었다. 그리고 일영은 엄마에게 없어서는 안될 아이로 자란다.


그러던 어느 날 일영은 엄마의 돈을 빌려간 악성채무자의 아들 석현을 만난다.

그는 일영에게 엄마와는 전혀 다른 따뜻하고 친절한 세상을 보여준다.

일영은 처음으로 차이나타운이 아닌 또 다른 세상이 궁금해진다.
그런 일영의 변화를 감지한 엄마는 그녀에게 위험천만한 마지막 일을 준다.

“증명해 봐. 네가 아직 쓸모 있다는 증명.”

 

 


 

 

 

 

 

영화 화이의 아이는 괴물을 삼켜버린다.
그러나 영화 차이나타운의 아이는 괴물이 된다.

 

화이의 괴물을 삼켜버린 아이는 자신을 뛰어 넘어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간다.
그리고 언제든 선택 할 수 있다. 괴물이 될 것인지 괴물이 되지 않을 것인지를.

 

 

 

 

 

 

 

그러나 차이나타운에서 괴물이 된 아이는 그 세상에 남아 있는다.
이미 괴물로 돼버린 이상 다른 선택은 없다.
그저 괴물의 세상을 지배하는 것 말고 아이에게 선택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아이가 만난 이 남자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아이는 주변을 정리할 일도 없었을지 모른다.

 

엄마는 일영에게 일부러 이 남자를 만나게 했다.

그건 일영에게 엄마의 자리를 내주기 위한 작업의 시작이었다.

 

어쩌면 엄마도 일영의 앞에 닥친 이런 종류의 친절한 남자에 대한 반응이 관문으로 닥쳤을지 모를 일이다.

그러니 일영의 나이가 충분히 생물학적으로 호기심이 일어날 시기에 작업을 진행했던 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호기심은 세상에 대한 관심과 배려로 확장 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이기도 했다.

 

더불어 이 남자가 아니었다 하더라도 아마 또 다른 놈에 의해 흔들림은 있었을 테지만

이 바닥의 선택이라는 게 모든 걸 제거하기만 하는 냉정함 뿐이라면

아이에게 그들은

남자든 사람이든 식구든 아무런 의미도 없는 존재들로 추락할 수 밖에 없다는 걸 보여준다.

 

 

괴물이 된 아이가 사람으로 살아보려 발버둥치지만 결국 더 큰 괴물이 될 뿐 사람으로 살 방법은 없다.

 

영화 화이에서 괴물을 삼킨 아이는 여자를 지켜냈지만

차이나타운의 괴물이 된 아이는 이 남자를 지키지 못하는 것으로도 설명되는 부분이다.


잘 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그 세계에서 이미 엄마의 새끼로 자리 매김 하고 있던 아이는
사람이 돼보려고 사람의 앞에서 잘해 보이려고 애쓰기 시작한다.

 


그러나 물과 기름처럼 어울리지 않는 아이의 행동은 이미 엄마에게 신호를 주고 있었다.

 

 

뭔가를 잘 하려고 애쓴다는 건 내게 부족하기 때문에 채워보려는 발버둥이다.

 

 

 

 

 

엄마의 눈에는 아이의 발버둥 치는 모습이, 괴물을 벗어나려는 아이의 발버둥 치는 그 모습이 보였으리라.

 

 

 

 

 

 

차이나타운은 내게 마치 여자가 사람이 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이고 불가능한 일인지를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했다.


신세계에서도 그는 주변 정리를 통해 자신의 시대를 열어가기 위한 준비를 끝마친다.

그건 결코 과거의 세력을 이어가는 과정이 아니다.
그러나 차이나타운에서는 주변 정리를 하는 이유가 오로지 하나, 조직의 대를 잇기위한 준비였다.

 

 

 

 

 

 

결코 새로운 세대의

새로운 세상이 아니다.

 

그저 대를 이어갈 명분을 힘으로 제압하고 그 자리에 올라 앉을 따름이다.

 

 

 

 

 

 

그렇기때문에 영화는 엄마와 똑같은 방식으로 고인을 기린다.
자신에게 성을 만들어 준 유일한 사람이며 조직을 물려 준 유일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대를 물려 조직을 유지하는 방식. 과연, 이게 여자의 방식일까?

 

 

마치 남자의 시스템 속에 적응해 가는 여자의 이야기를 직설적으로 풀어 놓은 듯 하다.


대한민국 땅에서 최저의 밑바닥으로 시작하는 피지배계층.
그 안에서 지탱하고 있는 엄마라는 조직.


차이나타운이어야 하는 이유와 여자여야 하는 이유를 다른 곳에서 찾을 필요가 있을까.

 

 

 


p.s.

 

여자의 현실을 코믹으로 포장한 드라마 문제있는 레스토랑
여자의 현실을 어둠으로 비유한 영화 차이나타운
여자의 현실을 직시하기 때문에 어두운 영화 마돈나.

 

역시 여자의 현실은 이래나 저래나 어둠에서 시작 된다는 걸 다시 상기하게 된다.

결국 피지배층에서도 가장 약한 계층이기 때문에 어두울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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