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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and ... 여자

룸 (2015), 세상 속으로의 탈출

by story-opener 2020. 11. 6.


Room

 

드라마
아일랜드, 캐나다
2016.03.03 개봉
118분
15세 이상 관람가

 

감독) 레니 애브라함슨
주연) 브리 라슨, 제이콥 트렘블레이, 조안 알렌

 

 

 

 

가로 X 세로 3.5미터의 작은 방
7년간의 감금
진짜 세상으로의 탈출

램프 하나, 세면대 하나, 침대 하나…
작은 방에 갇힌 24살 엄마와 5살 아들


7년 전, 한 남자에게 납치돼 작은 방에 갇히게 된 열일곱 살 소녀 ‘조이’. 세상과 단절된 채 지옥 같은 나날을 보내던 중, 아들 ‘잭’을 낳고 엄마가 된다. 감옥 같은 작은 방에서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가던 엄마와 아들. 어느덧 세월은 흘러 잭은 다섯 살 생일을 맞이하게 된다. 태어나 단 한 번도 방 밖으로 나가 보지 못한 잭을 더 이상 좁은 방안에 가둬 둘 수 없다고 생각한 조이는 진짜 세상으로의 탈출을 결심한다.

그러나, 그들의 극적인 탈출과 충격적인 과거 때문에 세상은 두 사람을 또다시 보이지 않는 방안에 가두려 하는데…

 

 


 

 

에마 도너휴의 소설 '룸'을 원작으로 하고 있고, 원작은 2008년 실화 오스트리아에서 발생한 오제프 프리츨의 친딸 감금 강간 사건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오제프 프리츨의 이 사건은 친딸이 11살 되는 해부터 강간을 시작했고, 18살이 되는 해부터 24년간 지하에 감금하고 강간하여 7명의 아이를 낳게 만든 끔찍한 사건으로 알려졌다.

 

 

 

1984년 8월 29일, 요제프는 학교에서 다녀온 엘리자베트에게 지하 토굴 정리를 도와달라고 부탁하여 토굴로 끌어들인 후 그대로 구타, 감금해 버렸다. 그런 후 태연하게 딸의 실종 신고를 하고 지하실에 갇힌 딸을 협박해 사이비 종교에 빠져 가출하니 찾지 말라는 편지를 쓰게 한다. 그렇게 딸이 종교에 빠져 집을 나간 것처럼 꾸미고는 살아온 것이다.

 

 

붉은색 표시는 감금당한 아이들이고 연두색은 입양된 아이들이다.

 

 

그중 세 명의 아이는 딸이 사이비 종교에 빠져 낳은 뒤 부모 집 앞에 버린 것처럼 위장해 입양했고, 나머지 세 명은 그대로 지하실에 감금했다. 입양한 아이들은 나이가 많거나 울음소리가 컸기 때문에 입양한 것이었다.

나머지 한 아이(셋째 아이의 쌍둥이 형제였다)는 출생한 지 사흘 만에 병으로 죽자 밖에서 대충 화장했다.

 

이후 지하에서 나온 아이들 중 요제프에게 입양된 세 명은 평범하게 자라 학교에도 잘 다니고 있었고, 큰 딸은 18세에 감금된 상태였기 때문에 생활에 대한 기억이 있어 풀려난 후 상황에 적응했다.

 

그러나 나머지 세 명의 아이들은 바깥세상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었고, 현저하게 떨어지는 언어 능력도 문제였지만 무엇보다 아이들 모두가 근친상간 출생으로 인한 공통적인 유전적 문제와 지하에서 감금당하며 병원이라고는 단 한 번도 간 적이 없기 때문에 이빨이 하나도 없는 상태였다고 한다.

 

무엇보다 요제프의 부인 로즈메리는 딸이 감금되기 전인 11살 때부터 성폭행을 당하고 있다는 것조차 몰랐다는 사실이 더욱 큰 충격을 안겨주기도 했다.

 

원작자인 에마 도너휴는 이 사건에서 영감을 얻어 '룸'을 썼지만 실화를 염두하고 만들어진 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영화는 잭의 내레이션으로 진행된다. 다시 말해 아이의 시선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는 뜻이다. 하지만 왜 일까?
어째서 첫 번째 피해자인 엄마 조이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끌어가지 않는 걸까?

 

 

 

개인적으로 몇 가지 이유를 생각해 봤다.

 

일단 바깥세상에 대한 시선이 서로 다르기 때문인 것 같았다. 바깥세상을 향한 잭의 시선은 마치 그곳을 동경하고 궁금해하며 또는 두렵기도 한 복잡한 시선이지만 그래도 미지의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갖고 바라보는 반면,

 

 

 

 

조이가 바깥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탈출의 대상이고,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갈망이며, 생존을 위해 반드시 가야만 하는 세상이었던 것 같다. 영화에서는 강간범인 아이의 아버지가 전기를 끊어 버리자 이 곳에 더 오래 있다간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 수 있다는 생존의 위기감 때문에 아이와 탈출 계획을 세우게 된다.

 

지옥 같은 감금 강간 생활 속에서 조이가 살아야겠다고 늘 다짐하게 만들어준 존재가 잭이었다.

그러니 반드시 살아야 한다는 그 절박함은 결국 잭의 목숨도 위태로워진다고 생각하니 탈출을 감행하게 만든다.

 

바깥으로만 가면 모든 게 해결될 거라는 믿음으로 그녀는 바깥에 대한 갈망을 드러내지만 그 해결은 결국 자신의 부모의 품으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하고 그녀에게 바깥세상은 부모의 품과 동일한 개념이었다.

 

결국 조이는 강간범이 만들어 놓은 룸을 벗어나 부모가 만들어 놓은 룸으로 돌아가길 원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실제로 조이는 부모를 만나자마자 납치되기 7년 전의 딸로 돌아가버린 듯한 모습이 된다.

딸이 이렇게까지 태도가 변하는 것은 자연스럽게 찾아드는 안도감과 함께 든든한 부모의 경제력도 한몫했다고 생각한다.

경제력이 뒷받침되지 못한 부모였다면 그녀와 아이는 병원에서 제대로 검사받고 안정을 취할 수 있었을까?

물론 조이가 사라지고 7년이 지나면서 부모는 이혼한 상태가 됐지만 각자가 가지고 있는 경제력은 그렇게 어려운 형편은 아니다.

 

조이의 입장에서는 앞으로 먹고사는 현실적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도 막막했을 텐데 일단은 지금 당장 의지할 수 있는 부모의 경제력이 있다는 점에서 안심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은 부모를 만나 회포를 푸느라 정신없는 사이 자신의 아이는 침대 위에 귀를 막고 머리를 처박은 채 웅크리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건 자신들이 감금당했던 그 시절 강간범이 룸으로 들어오면 아이는 귀를 막고 구석에 찌그러져 있어야 하는 그때의 모습을 연상시키는 걸지도 모른다. 결국 작은 룸에서 큰 룸으로 감금당한 것과 다를 바 없어 보이는 잭의 입장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했다.

 

결국 감독이 말하고 싶어 하는 '룸'의 개념을 전달하기에는 엄마의 시선보다 아이의 시선으로 전달하는 것이 더 분명하게 드러낼 수 있었던 것 같다. 보이는 곳으로의 감금과 보이지 않는 곳으로의 감금을 아이의 시선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아이는 엄마와 달리 작은 방에서 바깥세상으로 나온다면 적어도 어딘가에 감금되는 듯한 상황은 벗어날 것이라는 당연한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좀 더 큰 방으로 다시 갇혀버린 건 아닌지 의구심을 갖는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바깥세상이란 뭘까? 그저 좀 더 큰 방 인가?라는 그런 의구심을 갖는 뒷모습이 무척 난감해하는 듯한 모습으로 보였다.
그와 반대로 엄마는 너무 편안하게 숙면을 취하고 있다.

 

바깥을 훤히 볼 수 있는 통유리로 둘러진 공간에 서서 멍하니 바깥을 보는 이 모습은 처음 갇혀있던 작은 방의 천장에 뚫린 창문을 통해 하늘을 보는 것과 다르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한 가지 달라진 점은 하늘을 보려면 머리를 들어 올려야 했던 모습에서 이제는 눈 앞에서 하늘을 본다는 점이다.

 

어떻게 보면 그렇게 하늘을 바라보는 모습의 변화를 통해 아이는 자신이 처해진 상황이 달라졌다는 걸 느끼는 걸지도 모른다.

그저 작은 방에서 큰 방으로 바뀌었을 뿐 변한 건 없다는 사실을 느꼈던 걸지도 모른다.

 

그리고 잭은 점점 넓은 세상을 담을 수 있는 더 큰 룸으로 확장되지만 조이는 점점 작은 룸으로 축소된다.

 

 


 

 

 

작은 방에 갇혀있을 때는 엄마의 세계 속에 살았지만 바깥세상으로 나오면서 잭은 조이와 달리 차분하게 주변을 바라보고 안정적인 태도를 유지하기 시작한다. 마치 어느 정도 상황을 파악했다는 듯 잭은 어린아이답지 않은 단단함을 보인다.

 

반면 조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감금 생활에 대한 후유증과 가족 간의 불화 (어머니는 잭을 손자로 받아들이는 반면 아버지는 잭을 손자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언론의 지나친 관심으로 인해 조이의 우울증은 심각해지고 오히려 잭에게 화를 내거나 주변에 화를 풀려고 하는 이상행동을 보이기까지 한다. 

 

 

 

 

더 군다가 앞으로의 생계로 걱정하던 조이에게 유명 언론 인터뷰의 제안이 들어오고 생각지 못한 높은 출연료를 제안받자 조이는 고민하게 되지만 결국 인터뷰에 응하기로 결심한다.

 

 

잭보다 조이가 더 큰 혼란과 혼돈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모습은 유명 언론 인터뷰를 하고 나서 더욱 심해지게 된다.

 

인터뷰 질문의 요점은 그런 감금된 상황이 아이의 교육에 좋지 않을 거란 생각은 안 해봤냐는 것이다. 결국 그런 환경에서 아이를 낳을 생각을 한 게 잘못된 판단 아니었냐고 따지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낳은 건 이기적인 것 아니냐는 의미로도 해석될 수 있는 문제였다.

 

그러나 그런 상황에 처해보지 않은 그들의 어떻게 언론이라고 불릴 수 있는지 기가 막힐 노릇이지만 그 덕에 조이의 우울증과 죄책감은 더욱 심해지고 그 피해는 온전히 잭의 몫이 돼버린다.

 

 


 

결국 조이는 잭의 곁을 떠나 증세가 나아질 때까지 병원으로 감금되고 조이와 잭은 처음으로 서로 떨어져 지내게 된다.

 

 

 

그런 조이에게 힘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자신의 머리를 잘라 조이에게 전해달라고 부탁한다. 잭이 머리를 자르지 않은 이유는 머리를 자르면 힘이 약해져 엄마를 지켜주지 못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 머리카락을 과감히 잘라 엄마에게 보내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 잭은 그렇게 한 걸음씩 성장해가고 있었다.

 

 

바깥 세상으로 나온 잭은 머리를 자르게 되면서 엄마를 위해 뭔가를 할 수 있는 존재로 한 발 나아가게 되고 자신을 드러내며 조이에게 잭이 있음을 알린다. 그러니 세상을 포기하지 말고 꿋꿋이 이겨내길 바라는 마음이 전달되서인지 조이는 조금씩 일상으로 돌아오게 된다.

 

 

 

 

마지막은 그들이 처음 갖혀있던 곳으로 돌아가 그 룸과의 작별을 고하는 것으로 마무리를 짓는다.

 

 

 

잭은 왜 조이에게 작별인사를 하라고 했을까.

조이는 방을 바라보며 어떤 작별을 고한 걸까.

 

아마 잭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조이가 과거의 시간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게 아니라 그 시간의 결과물인 트라우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조이가 다시 시작하려면 그 트라우마와 작별을 고해야 한다는 걸 말이다.

 

조이는 입밖으로 작별을 고하며 마음에 새기는 것 같다.

잭이 원하는 것도 그런 것 아니었을까.

 

그들은 이제 과거의 시간 속 방에서 나와 현실이라는 더 큰 방으로 옮겨간다.

 

현실이라는 룸은 무엇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건지 그리고 현실의 문이 열린 그 순간 여자와 아이는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볼 문제다. 영화 속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들을 약간 보여주긴 하지만 그 현실이 무엇인지는 보여주고 있지 않다.

 

 

하지만 과거의 룸에서 나오면 더 큰 룸으로 옮겨 가는 것임을 보여주는 것.

그래서 이 현실이 또 다른 룸이라는 걸 생각하게 한다는 점에서 세상이 어떤 룸인지 생각해 보게 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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