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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경제 : 노동자는 거지, 덜 배운 자라는데..

by story-opener 2020. 10. 21.

 

 

 

노동자는 거지·덜 배운 자라는데 "3년 지나면 난 노조에 가입할 거예요"

 

[어서와, 노동은 처음이지?③] 노동 가르치는 광주 전남공고를 가다.

 

13.12.14 11:42l최종 업데이트 13.12.14 11:42 l 강민수(cominsoo)

 

▲ 평택지역 중학생들이 노동 관련 특강 자리에서 '노동자는 ○○○이다'란 문장을 완성하는 시간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내용이 조금 당황스러웠다. 중학생들은 노동자들을 '덜 배운 자', '외국인', '거지', '장애인' 등으로 표현했다. ⓒ 이창근 트위터

 

 

'거지, 장애인, 덜 배운 자, 외국인'


'노동자는 OO이다'는 문장의 빈칸에 중고학생들이 채운 답이다. 부정적 인식을 넘어 '노동자 혐오', '노동자 포비아(혐오증)'라고 부를 만하다. '노동력을 제공해 임금을 받고 생활을 유지하는 사람'이라는 뜻의 노동자. 자영업자를 제외하면 전체 인구의 50%가 넘는 수가 노동자인데도 현실은 이렇다. 학교에서부터 제대로 된 노동 교육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이런 상황에서도 노동 교육을 하는 학교가 있다.

 

10월 16일 오전, 광주 광산구 신창동 전남공업고등학교. 기계과 1학년 1반, 33명의 학생들이 3, 4명씩 조를 이뤄 모여 앉았다. 책상 위에는 글씨가 쓰인 흰 종이들이 놓여 있었다.

"위원님들, 어제 보고서 완성 못하셨죠? 오늘 마무리하겠습니다. 제대로 작성을 해야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아요. 엄중하게 써주셔야 합니다."



대형 재난 사고 조사에서 노동을 배우다


이 반의 담임교사인 임동헌(40)씨는 학생들을 '위원님'이라고 불렀다. 학생들은 이 수업에서 방글라데시 의류 공장 붕괴 사고의 진상조사위원이 되기 때문이다. 붕괴 사고는 지난 4월,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 지역의 라나플라자 의류 공장에서 일어났다. 옥상에 불법으로 설치한 발전기의 진동에 의한 붕괴 사고는 정부 공식 통계로 사망자만 1127명, 부상자 2500여 명의 피해를 냈다.

이날 수업의 과목명은 '진로와 직업'. 임 교사는 이 시간을 청소년들의 노동, 인권, 시민권 등을 가르치는 데 활용한다. 이번 주에 공부할 단원은 '존엄한 노동, 인간다운 삶'이다. 학생들이 사건의 진상을 파악해 조사 보고서를 작성하는 게 목표다. 보고서의 항목은 ▲ 사고 원인 ▲ 피해 상황 ▲ 노동자들의 월급 ▲ 방글라데시 물가 ▲ 사고와 관련된 기업 ▲ 기업, 정부, 노동자의 잘못 등이다.

보고서를 작성하는 데 참고할 힌트가 있다. 44장의 상황 설명 카드다. 여기에는 공장 규모를 비롯해 사망자의 수, 붕괴 원인 등 사고 관련 정보가 담겨 있다. 이것을 둘러싸고 위원들이 회의를 벌인다. 9조는 '정부는 무슨 잘못을 했나요?'라는 질문에서 막혔다. 학생들은 서툴지만 의견을 내놓았다. 기록을 맡은 이진학군의 펜이 바쁘게 움직였다.

"노동자들이 노조 설립에 나섰지만 경영진 압박과 회유가 많았대. 이런 건 정부가 잘못 감독해서 그런 것 아닌가?"(이우진군)
"아녀. 그건 기업 잘못이지. (카드 하나를 들면서) 여기 보면 방글라데시에는 노동조합 결성된 곳이 얼마 없었네. 이런 게 정부의 잘못이지."(이진학군)

기업과 정부의 책임과 역할을 어떻게 구분하는지 아리송하다. 같은 조의 유승훈군, 김도훈군도 다른 카드를 유심히 살펴봤다. 의견을 듣던 임 교사가 다가와 '위원'들에게 조언했다.

"정부의 역할은 노동자, 사용자 등 사회 구성원들이 법 테두리 내에서 제대로 행위하고 있는지 관리, 감시하는 것이에요. 여기서는 기업이 공장 운영에 관한 법들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는지 감시하는 거죠."

 

 

노동자는 무엇인지, 물음표를 던지다

 

 

▲ 16일 오전, 광주 광산구 신창동 전남공업고등학교 기계과 1학년 1반에서 노동 교육 수업이 진행됐다. 33명의 학생들이 3, 4명씩 조를 이뤄 지난 4월 방글라데시에 발생한 의류공장 붕괴 사고의 진상조사보고서를 작성했다. ⓒ 강민수관련사진보기

 

 

 

작성이 끝난 뒤, 보고서는 국회에 제출됐다. "사실은 내가 국회의장"이라고 임 교사가 말하자 한 학생이 "만날 싸우는 그 사람"이라고 말했다. 순간 교실에 웃음이 터졌다. 임 교사는 또 "여러분 모르게 별도의 사건 조사위원회가 있었다"며 "위원님들이 정부와 기업, 혹은 노동자들과 결탁해서 조사를 왜곡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는 비밀 조사 위원회, 즉 자신이 예시로 작성한 보고서를 학생들에게 보여줬다. 이후 각 조에서 작성한 보고서를 학생들과 공유했다.

조사를 통해 드러난 방글라데시 노동자들의 삶은 처참했다. 노동자들은 월급으로 38달러, 초과임금을 포함하면 한국 돈으로 약 7만~8만 원을 받았다. 방글라데시의 물가를 고려하면 최저임금도 되지 않는 돈이다. 하지만 그들이 만든 옷은 세계 유명 브랜드였다. 나이키, 자라, 베네통, 캘빈 클라인, 랄프 로렌 등 세계적 의류 기업의 하청업체 노동자였던 것이다. 방글라데시에서 해외 자본이 벌어들이는 돈은 연간 1조 달러, 한국 돈으로 1000조 원에 이른다. 학생들은 생각은 자신들이 평소 입는 옷을 만든 그들이 억울하게 숨졌다는 데로 이어졌다.

"1000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억울하게 죽었다는 것은 가슴 아픈 일입니다. 이런 사고는 노동자들이 단결할 수 없어서 발생한 측면이 있어요. 실제로 노동자들이 사고 전날 벽에 균열이 있었다고 얘기했는데 사업주에게 돌아온 답은 '문제 없으니 일을 하라'는 것이었죠. 정부는 기업의 말만 듣고 기업은 그걸 100% 이용하는 상황에서, 만약 노조가 있었다면 어땠을까요. 그런 고민을 해볼 수 있겠네요."

임 교사는 일방적으로 강의하기보다 학생들의 참여를 유도했다. 질문을 던져 학생들이 생각할 시간을 줬다. 실습이 많고 교실에 앉아 수업을 받는 시간이 적은 학생들에게 이번 수업은 흥미로워 보였다. 서로 장난치는 학생, 무심히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학생, 엎드려 자는 학생도 있었지만 대부분 적극적으로 수업에 참여했다.

임 교사는 이어 정부의 잘못을 5조에게 물었다. 5조를 대표해 오찬희군이 답했다.

오찬희군 : "노조 결성을 못하고 있는데 정부가 아무 조치를 하지 않았습니다."
임 교사 : "노조, 그거 시끄럽게 파업만 하는 곳 아닌가요?"
오찬희군 : "3년 지나면 저는 노조에 가입해야 하는데…, 그건 아니죠. 노동자가 불편한 게 있으니까 파업을 하는 것 아닌가요?"

또 노동자의 잘못은 무엇인지 물었다. 한 학생이 "위험한 줄 알면서도 기업에 대책을 요구하지 않아서"라고 답했다. 임 교사는 "노동 의식 부재 탓이 아닐까"라고 되물었다. 이어 "수업의 핵심이 여기에 있다"고 말하자 관심이 집중됐다.

"'누군가 나서겠지', '누군가 만들어주겠지'하면서 주체적으로 움직이지 못하고 남에게 의존하다 보면 어느 누구도 자기 권리에 대해서 나서지 않게 됩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꽃은 피는 것이죠. 방글라데시 노동자에게 미안한 얘기지만 자기 권리에 대한 고민과 그것을 조직해 나가는 힘이 필요했어요. 말만 하면 들어주겠지 하고 가만히 있는 건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지금도 한국에는 철탑에서 사는 노동자가 있습니다."

 

윤리적 소비로 노동자가 이긴다

 

▲ 이날 노동 교육 수업에 학생들은 적극적이었다. 실습이 많고 교실에 앉아 수업을 받는 시간이 적은 학생들에게 이번 수업은 흥미로워 보였다. 서로 장난치는 학생, 무심히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학생, 엎드려 자는 학생도 있었지만 대부분 활기차 보였다. ⓒ 강민수

 

수업을 마치는 종소리가 울렸지만 학생들은 자리를 지켰다. 임 교사가 칠판에 '공정한 무역, 윤리적 소비'라고 썼다. 얼핏 보기에 노동과는 관련이 없는 듯한 주제였지만, 그는 방글라데시 의류 공장 사고와 해외 자본의 특성을 연결시켰다. 하청업체에게 사고의 책임을 떠넘기고 1000조의 이익만 남기는 그들을 비판하며 착한 소비의 실천을 강조했다.

"메뚜기 떼가 수천km 날아와 논밭을 싹쓸이하고 사라지는 것처럼 해외자본이 중국과 동남아시아, 그리고 아프리카 시장을 잠식하고 있어요.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뭘까요? 여러분이 노동자가 돼서 단결하는 것도 중요하죠. 근데 노동자들은 소비도 하죠? 노동할 때는 사용자에 고용돼 있지만 소비할 때만큼은 우리는 사용자를 고용하는 셈이에요. 여러분이 '윤리적이지 않은 물건은 소비하지 않겠다'라고 다짐하는 게 이 거대한 자본과의 싸움에서 승리하는 거죠. 이렇게 해서 결국 인간적인 삶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노동자=빨갱이' 공식에 노동 교육 체계화, 절망적이다"
[인터뷰] 노동 교육 전도사, 임동현 교사

 

▲ 광주 전남공고의 임동헌 교사. 그는 매주 월, 화, 수 1교시마다 자신이 맡은 기계과 1학년 1반 수업을 노동과 인권, 시민권 등을 수업한다. ⓒ 강민수

 

 

- 전공이 통신이던데 노동 교육을 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
"(1990년대 말) 교사 초년 시절에 학생 취업을 담당했다. 노동권에 대해 전혀 개념이 없었던 때여서 '사장님 말씀 잘 들어라', '공고 나와서 이런 직장 얻기 힘들다, 무조건 버텨라'고 학생들에게 말했다. 어느날 취업을 보냈던 한 학생에게 전화가 왔다. 너무 힘들다고 했고 내가 직접 찾아갔다. 그 학생 얼굴이 시커멓더라. 숙소는 컨테이너였고, 자는 데도 물량 밀리면 깨워서 일을 했단다.

사장한테 너무하다고 얘기했더니 '학교 선생이 세상 물정 모른다, 이 정도면 괜찮다'고 말을 했다. 당시 근로기준법을 알았으면 가만히 있지 않았을 것이다. 돌아오는 차안에서 너무 미안했다. 그런 아픔이 있어서 전교조 실업교육위원회를 찾아갔고, 여기까지 오게 됐다."

- 전남 공고 학생들은 졸업 후 취직을 많이 하는 편인가?
"학교 전교생이 1500명이다. 거의 대부분이 취직을 원하지만 좋은 일자리가 없어서 대학을 가게 되는 경우도 많다. 또 중소기업에 갔더니 처우가 형편이 없어서 다시 대학교를 갈 수밖에 없다. 대기업은 뽑는 숫자가 적고 중소기업은 편의점 알바하는 애들이랑 다르지 않다."

- 이 수업을 하면 실습생들, 취직 준비 하는 학생들이 고마워할 것 같다. 학생들 반응은?
"20%는 내가 만들고, 80%는 학생들이 만드는 것이다. 학생 스스로 노동자로 살아야 하는 걸 아는데, 이 수업을 고맙게 생각한다."

- 수업 외에는 어떤 활동을 하는지.
"지금은 전교조 광주지부 인권교육국장, 광주 청소년노동인권 네트워크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다. 학교에서는 청소년학생인권 동아리, '일하는 청소년'을 운영하고 있다. 청소년이 주체가 되지 못하고 어른들의 눈에서 키워진다는 생각에서 학생 7명을 모았다. 매달 야외 캠페인을 벌이고 노동 인권 교육도 한다."

- 광주교육청 차원에서 지원은 어떤가. 다른 학교에서 노동 수업이 진행되고 있나?
"교육청은 교내 민중인권 동아리 200개를 지원하고 있다. 민중인권도시인 광주는 노동 수업도 하고 교사들의 학술 동아리와 연구 사업을 지원하고 있다. 현재에는 네트워크 소속 교사 일부가 노동 수업을 진행하지만 쉽지 않다."

- 쉽지 않을 것 같다. 노동 교육에 관심을 보이는 교사들이 있나?
"전체적으로 교사들이 노동을 바라보는 시각이 친기업적이다. 잘못된 교육을 하는 경우가 많다. 모 광고에서 '기업이 살아야 일자리가 늘어난다'는 말이 뭐가 문제냐라고 말한다. 그 문구가 가진 함의에 대한 고민이 전혀 없다. 교사들도 학창시절에 노동 교육을 못 받아서다. 그 교육을 못 받은 대가를 우리가 치르고 있는 것이다."

- 학교에서의 노동 교육을 어떻게 제도화할 수 있을까?
"교과서를 바꾸는 게 가장 좋다. 지금 정규 교과서인 '공업 입문'은 전경련 산하 연구원들이 필자로 들어가 있다. 친기업적일 수밖에 없다. 일선 학교에서 정규 과정 외에서 소화하기가 쉽지 않다. 내가 하는 방법은 사실상 변칙이다.

교육부가 교과서 편성 지침을 바꾸는 방법도 있다. 단순한 노동기본권 소개가 아니라 구체적인 내용을 교과서에 포함하라는 지침을 내릴 수 있다. 하지만 '노동자=빨갱이' 인식 때문에 쉽지 않다. 국민 대다수가 노동자로 살아가는데 노동 교육을 위험하게 보는 것이다. 그 시각을 바꾸지 않으면 어렵다. 절망적이다."

 

 

 


 

정부가 노동에 대한 개념이 없는데 교육부에 노동의 가치가 존재할 리 만무하다.

교육부가 노동에 대한 개념이 없는데 교육정책에 노동의 가치가 존재할 리 만무하다.

 

대학이 노동에 대한 개념이 없는데 교육자에게 노동의 가치가 존재할 리 만무하다.

교육자가 노동에 대한 개념이 없는데 대한민국에 노동의 가치가 존재할 리 만무하다.

 

 

 

노동자가 무엇인지 알기위해 필요한 건 자본이 무엇이고 자본가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나를 알기 위해 상대를 알아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러니 자본주의에 대한 지식을 공유하고 배우지 않으면 노동자에 대한 인식과 올바른 수용은 불가능하다.

 

노동이라는 이미지가 단순히 몸을 쓰는 것에 한정되어 있다면 우리는 부속품으로 전락된 삶을 벗어나지 못한다.

 

이성적인 통찰을 만들어가는 것도 노동이며,

그 통찰을 표현하는 것도 노동이고,

그것을 위해 기반을 만드는 교육과 사회환경개선도 노동임을 이해할 때 우리는 사람다운 노동자가 될 수 있는 것 아닐까.

 

그때가 되면 더 이상 노동자도 사람이라는 구호를 외칠 필요도 없을 테지만,

더욱 중요한 건 노동을 실현시키는 원동력이 자본이라는 점을 색안경 없이 제대로 수용할 수 있을 때

자본가와 노동자가 공정하게 생존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자본이 있기에 노동도 가치를 인정 받는 것이며,

노동이 있기에 자본도 확장 가능해지는 법이다.

 

그 둘은 서로 분리시켜 생각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마치 자본은 자본만으로도 존재할 수 있고 인간의 노동 없이도 확장 할 수 있다는 오만과 교만에 빠져버리거나

노동의 발전 없이 노동의 가치를 높이려고만 하는 탐욕에 빠진다면 더 이상 지구상의 노동은 생존할 수 없다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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