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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경제 : 노동에 대한 얕은 생각

by story-opener 2020. 9. 6.

 

 

자본주의 경제에서는 자본가들이 서로 경쟁하면서 더 많은 이윤을 얻기 위해 새로운 상품, 기계, 생산방법을 끊임없이 발명하기 때문에,
노동자들은 온갖 부문에 정통하고 '전면적으로 발달한' 개인이 되지 않고서는 일자리를 안정적으로 지킬 수가 없게 될 것이고,
또한 이런 개인들이 결국 새로운 사회의 주체가 되어 차별을 없애면서 협동해서 높은 노동생산성을 달성하게 된다고 예측했습니다.

 

- 자본론 공부(김수행 저, 돌베개) 中 p.90 -

 

 

 


 

 


노동자는 왜 노동을 하는 것일까?

 

- 자의에 의해서든 타의에 의해서든 사회변화에 따라 산업노동자가 된 이상
노동의 대가를 자연에서 얻을 수 없게 됐으니 결국 자본가에게 노동의 대가를 받아야 한다.
노동자는 자본가에게 노동력을 팔고 자본가는 그 대가로 임금을 줌으로써 거래는 성립된 것이다.


그러나 거래가 끝났다고 할 수 없다.
그 결과물에 따른 분배가 남았기 때문이다.

 

그 결과물은 상품의 가치에 따른 이윤을 말한다.

 

이윤은 "자본가의 자본 + 노동자의 노동력" 으로 만들어 진 결과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단, 자본가와 노동자가 이윤에 기여한 정도에 따라 분배가 달라질 뿐이다.


그러므로 자본가는 이윤의 일부를 노동자에게 나눠줘야 할 이유가 있지만 그것이 의무가 되는 지는 별개의 문제라고 보여질 수 있다.


이윤에 대한 노동자의 권리를 지켜주는 것이 자본가의 의무가 되려면
자본가와 노동자의 계약조건이 어떻게 이루어졌는가를 알아봐야 하기 때문이다.

 

자본가는 사회자선가가 아니다. 따라서 이윤에 대해 분배해야 할 의무가 없다. 이미 거래를 통해 노동의 가격을 치뤘기 때문이다.


단, 자본가가 장기적으로 이윤을 확장시키고 선순환 할 수 있도록 하기위해, 즉 자본가를 위해 더 나은 자본의 이윤을 위해
노동자와의 관계를 사회적으로 조율해야 할 필요가 있다.

 

자본가가 노동자에게 이윤을 나눌때는 여러 가지 방식으로 나눌 수 있다.
보너스라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있으며, 간접적으로 사내 복지로 돌아갈 수 있으며, 좀 더 거시적으로 사회복지로도 돌아갈 수 있다.
이 모든 것들이 노동법과 세금에 연관되어 있으니 결국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의 관계 조율은 정책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이며,
이는 정부가 해야 할 역할이라고 봐야 한다.


결국 정부는 자본가와 노동자의 관계 개선을 위해 정책을 마련하는 역할을 해야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 관계 개선의 기준이 자본가의 이익에만 쏠려 있다는 문제점을 해결 하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유는 단 하나.
정부와 자본가는 서로가 서로의 이윤을 극대화 시키는 것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이런 관계 속에서 그저 막연히 정부와 자본가에게만 조른다고 해결 될 부분일까?

 

노동자의 포지션은 어떻게 잡아야 할까?

 

여기서 새로운 질문들이 생긴다.

 

노동자는 자본가와 정부를 알기위해 어떤 노력들을 얼마나 했을까?
과거의 노동자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고 하는데 정말 그럴 필요가 없었던 걸까?
과거의 노동환경과 지금의 노동환경이 달라졌다면 이유는 무엇일까?

단순히 기술의 발전 때문일까?
밀레니엄이라는 새 천년을 맞이했기 때문일까?
그리고 정말 노동환경이 달라졌다면 무엇이 어떻게 달라졌을까?

세상의 변화 속에서 노동과 노동자의 변화는 무엇이 있었던 걸까?


마르크스의 말대로 자본가는 이윤을 늘리기 위해 지속적인 발전을 한다. 그렇기때문에 더 많은 이윤을 가져갈 수 있었다.
기계 개발이 그 대표적인 예가 된다.


반면 노동자는 이윤을 늘리기 위해 지속적인 발전이 있었던가? 아니. 질문을 달리 한다면,

과연 노동자는 이윤을 목적으로 노동을 했었을까?

 

자본가는 분명 노동의 목적을 이윤에 두고 활용했다는 것에 이의를 제기 할 필요가 없다.
자본가는 그 자체로 모든 활동의 목적이 이윤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동자는 어떨까?
노동자의 노동력 제공 목적이 이윤에 있는 것일까?

 

노동자는 단지 이윤이 생겼으니 내게 좀 더 달라는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을 뿐, 왜 그래야 하는지에 대한 명분이 뚜렷하지 않기 때문이다.
단지 생산을 거들었다는 이유만으로 이윤을 분배해 달라는 요구는 인공지능이 생산과정에 개입되는 21세기에 먹힐 수 있는 주장은 아니라고 본다. 그랬다면 이미 전자동시스템으로 돌아가고 있는 기계설비들이나 그것들을 관리하는 수준까지 가고 있는 인공지능도 똑같은 대우를 해줘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이들이 알듯이 기계나 인공지능은 4대보험도 필요없고 복지도 필요하지 않은 노동력들이다.

한낱 기계부품이나 시스템에 인간을 비유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하겠지만 그런 대체품들이 인간의 노동력보다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일을 해나간다면 비용이 많이 드는 노동자의 채용보다 비용대비 더 효율적인 기계나 시스템도입이 자본가에게는 훨씬 매력적인 선택이 될 수 밖에 없다. 이건 간단히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보면 빠르게 이해 할 수 있는 일이다.

 

게다가 노동자가 말하는 이윤을 나누는 방법도 자본가의 입장에서는 그저 가치 창조에 대한 거래가 아니라,
단순히 노동을 행사한 것에 대한 대가로 임금에 부여해 달라는 막연한 떼 쓰기로 보일 뿐이다.

노동자와 자본가의 계급 구분은 여기서 난다고 봐야 할 것 같다.


각자의 목적이 다르기 때문에 누군가는 지배하게 되는 것이고, 누군가는 지배 당하게 되는 것이라는 생각에 동의한다.

자본가의 목적인 이윤을 노동자가 노동을 한 결과물 중의 하나니까 배분해달라는 논리는 자본가에게 설득력이 약할 수 밖에 없다.

애초 그 이윤창출의 방법과 기술은 자본가의 손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윤창출의 방법과 기술을 개발하거나 수정보완한 노동자라면 이윤에 대한 자신의 몫을 주장할 수 있고 그래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자본가는 노동의 대가를 이미 치뤘으니 이윤은 자본가의 몫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노동자가 이윤에 대한 권리를

제대로 받으려면 어떻게 하면 될까?

 

결론은 노동자가 노동을 하는 목적을 자본가와 동일하게 가져야 한다는 점이다.


즉, 노동자가 노동을 하는 목적을 임금에 두지 않고, 이윤에 둬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야만 이윤에 대한 노동자의 권리와 의무가 함께 생기고, 자본가 역시 이윤을 노동자에게 배분해야 할 의무가 생기는 것이다.
자본가가 노동자에게 이윤배분을 꺼리는 이유는 노동자는 이윤에 대해 권리만 요구할 뿐 의무를 다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윤에 대한 의무.
이제 노동자에게 노동의 의미는 단순한 생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현실을 직시하고 받아들여야 할 부분인 것 같다.

 

더불어 국가가 말하는 새로운 노동시장에 대한 새로운 노동교육 역시 노동의 의미를 인간다운 생활을 위해 이윤을 창출할 수 있는 창조적인 개념으로 연관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노동자의 의미는 무엇일까?

 

- 과거 노동자의 의미는 자본가에 의해 정해진 개념이라고 한다면,

이제 노동자의 의미를 노동자 스스로가 정의해야 할 시기라고 생각 한다.

시장 안에서 거래가 가능한 결과물을 만들 수 있는 존재를 노동자라고 한다면 그 노동자는 분명 가치에 따른 이윤을 생각하게 될 테고,
그에 맞는 거래에 필요한 조건들을 분명하게 명시 할 기준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과거에는 노동자의 먹고 사는 문제를 자본가에게 의지해야 했다면, 이제는 조금씩 그 의지에서 독립할 수 있는 새로운 개념의 노동자로
발전되어야 할 시기에 놓여있다. 어쩌면 자본가와 노동자의 관계는 새로운 국면으로 들어서는 걸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로 따져 묻는다면 나는 어떤 노동자라고 정의 할 수 있을까?

아니, 그보다 나는 과거에도 노동자였던 걸까? 나는 사회에서 어떤 포지션에 있었던 걸까? 앞으로 어떤 포지션으로 향할 수 있을까?
직장인을 노동자라고 할 수 있냐는 외부의 질문에 답을 할 수 없었다. 직장인은 뭘 생산하지? 직장인은 생산자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공급자도 아니다. 직장인은 뭘까..

노동자와 근로자는 시장 안에서 어디에 위치하고, 어디로 향하고 있는 걸까?

나는 단 한 번도 거래 할 수 있는 결과물을 온전히 만들어 본 경험이 없다.
언제나 외부의 결과물 생산을 거들 뿐이었다.

생산 과정을 모른다면 노동자라고 할 수 없다고 생각 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노동자라고 당당하게 말 할 수 없다.

 


 

 

 

그러나 인공지능의 발달로 더 이상 인간의 노동이 필요없는 세상이 된다면

인간은 더이상 노동을 수단으로 소득을 얻을 수 없게 된다면.

 

그때가 오면 인간은 무엇으로 인공지능을 대할 것인가.

인공지능과 인간의 차별화를 어디에서 어떻게 가져와야 할까.

인간에게서 노동의 가치를 빼앗는다면 인간은 그 존재 이유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인공지능이 자본가의 자리도 잠식한다면 과연 인간은 무엇으로 존재 이유를 설득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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