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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이슈

21세기 노동력은 노동자인가, 노동시스템인가.

by story-opener 2020. 11. 29.

 

출처 : 홍대신문 2019.03.26기사 '나 ○○○은 균열일터 노동자입니다'

 

 

"노동자도 사람이다"

"청년노동자도 사람이다"

"이주노동자도 사람이다"

"여성노동자도 사람이다"

 

이 말은 아직까지도, 21세기가 되도록, 노동자는 사회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살고 있다는 의미다.

도대체 왜! 라고 묻는다면 그건 자본가들의 노동력 착취, 권력집단의 탐욕, 힘 없는 노동자들의 소리없는 아우성 등등을 이유로 들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건 노동계급의 환경은 21세기가 된다해도 달라지지 않을 기세라는 점이다.

 

이유는 단 하나!

 

자본은 노동을 비용으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이 시선을 바꾸지 않는다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품으로 전락한 노동자의 희생이 줄어들 수 없는 것도 현실이다.

하지만 열악한 환경의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현실을 손 놓고 멍하니 보고 있기만 한 것도 아니다.

 

언론과 대중을 향해 자신들의 상황과 처한 현실을 폭로하고 관심을 호소하며 법과 사회에 목청 높여 소리도 질러보았지만 그들이 원하는 만큼의 관심과 호응을 불러일으키기는 역부족이었고, 때론 그 호소에 대중의 관심과 분노를 끌어내더라도 잠시동안 위로를 받는 것에서 더 나아가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다.

 

 

hiupress.hongik.ac.kr/news/articleView.html?idxno=2087

나 ○○○은 균열일터 노동자입니다

기업과 노동자, 그들의 좁힐 수 없는 간극에 대하여

 

 

http://hiupress.hongik.ac.kr/news/articleView.html?idxno=2087

 

hiupress.hongik.ac.kr

 

도대체 우리는 왜, 노동자의 죽음에 분노하는 것으로 멈추는 것일까?

 

우리 모두가 노동자이며 노동계급에 속해있는데 어째서 죽은 자의 목숨만 안타까울 뿐이라고 내뱉는 것에서 끝나는 것일까.

가슴 아프게도 이 의문에 대한 답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나는 대우받고 있으니까.
 나는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건 아니니까.
 나는 저런 노동자는 아니니까.
 나는 노동자가 아니니까.
 나는 저정도는 아니니까.
 .
 .
 .
 나는 아니니까.

 

우리는 결국 나에게 닥친 일은 아니라는 것에 안도하며, 어쩌면 나 대신 누군가가 희생된 것에 안도하며, 멀리 강 건너 불구경 하듯 그렇게 바라보며 웅성대고 있었다는 걸 우리들 대다수가 부정하지 못할 것 같다.

 

결국 노동자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서는 당연히 있어야 할 사회 안전망을 장착시키고 더 본질적으로는 자본주의 사회의 노동구조를 바꾸는 것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깊이 공감하는 부분이다.

 

기사에서도 언급됐던 하청구조의 문제와 그 속에서 부품이 된 노동자들의 저임금 생활을 뜯어고쳐야 하는 것도 반드시 해야 할 부분이기도 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더 이상 우리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에서 우리 스스로가 생각을 바꾸지 않는다면 사선에 노출되어 있는 노동자의 현실은 결국 우리 모두에게로 확산될 것이다.

 

1980년에 이미 지구 온난화와 환경파괴에 대한 경고가 있었음에도 우리는 그 현실을 닥친 지금에서야 아우성인것과 마찬가지로.

 


 

21세기 노동력은 노동자인가, 노동시스템인가.

 

우리는 왜, 안전한 노동시장에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우리는 왜, 죽음과의 사투가 우리의 상황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걸까?

현장에서 노동하는 그들의 상황이 우리에게 닥치지 않을 거라는 착각은 왜 생긴 걸까?

 

이 질문들에 대한 가장 직접적인 대답은 우리는 일하는 곳이 다르다는 이유에서다.

아직은 안전한 사무실에서 대기업의 일원으로, 또는 짜증나고 지겨울 때도 있지만 그래도 안정적이고 노후가 보장되는 공무원이라서, 혹은 인터넷 세상 속에서 정보처리를 취급하는 고급인력이라서 안전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모든 믿음은 금새 깨져가고 있다.

21세기가 시작되고 20년이 흘러가며 4차혁명이 자리잡혀가고 있는 지금.

그로인해 수 많은 직종이 사라지며 인간의 노동을 필요로하는 일은 그만큼 줄어들 것이라고 예견한 상황들이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 이런 현실 속에서 아직 인간의 노동이 개입되어야 하는 마지막 노동시장은 저물어가는 그 뒷모습이 너무도 고약하고 암울하기만 하다.

 

그렇게 저물어가는 노동시장은 사라지면 끝나는 것 아니냐고 말한다면 당연히 그렇지 않다는고 말 할 수 밖에 없다.

최전선에서 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하던 일터가 사라지면 그 다음으로 사라지게 될 노동시장, 그 다음 사라질 노동시장, 그리고 그 다음을 순차적으로 사라지게 만들기때문이다. 혹은 적잖은 노동시장이 한 순간에 사라질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쉽게 찾아 볼 수 있었던 은행지점들이 대폭 축소된 현상은 모바일뱅크의 등장으로 벌어진 일이고,

주식시장의 수 많은 중개인들이 한 순간에 사라진 현상도 인공지능의 정보처리 능력이 우월하기 때문이고,

심지어 의사들의 진단능력보다 더 객관적인 진단능력을 발휘하는 인공지능이 현실로 적용되며 의료계 종사자들도 위기의식을 느끼기 시작하고 있다. 게다가 통계나 수치와 관련된 빅데이터의 수집 및 정보처리 분야에서는 인공지능의 능력을 인간이 쫓아갈 수 없다는 건 바둑계에서도 이미 증명된 일이니 부수적으로 더 할 말이 없을 것 같다.

 

 

 

이미 소비시장이 온라인 시스템으로 옮겨 간 이 현실에서 오프라인에 남아 있는 노동자들은 플랫폼노동자로 옮겨가게 됐지만, 결국 운송시스템이 인공지능의 빅데이터 시장과 5G 통신망으로 연결되면 플랫폼노당자는 사라지게 된다.

  

이 시점에서 질문을 던지게 된다.

 

그럼, 우리가 노동시장이라고 부르는 이 시장은 모두 사라지는 걸까?

이에 대한 답변은 간단하다.

 

지금 당장은 아니겠지만 결과적으로는 사라진다는 것이다.

 

이미 그 과정에 들어간 노동시장이 바로 목숨을 걸고 일하는 사선의 노동현장이다.

그러나 사라져가는 과정이 아직은 시간을 요하기때문에 그 안에서 자본을 상대로 생존싸움을 진행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출처 : https://www.keyence.com/ss/general/iot-casestudy/merit/introduction.jsp

 

출처 : KEYENCE Introduction - IoT and Sensors

IoT(사물인터넷 Internet of Things)란, 인터넷에 연결되어 IoT 애플리케이션이나 네트워크에 연결된 장치, 또는 산업 장비 등의 다른 사물들과 데이터를 공유할 수 있는 수많은 '사물'을 말한다.

 

 

 

그렇게 자본은 인간의 노동에서 기계의 노동을 넘어 노동시스템을 장착하기 위해 생산시스템을 교체하기 시작했다.

자본도 21세기 미래산업에서 생존을 넘어 더 확장하기 위해 진행해야만 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자본의 입장에서 바라본 인간의 노동이 기계의 노동과 비교대상이 되는 이유를 생각해보면

투자대비 생산량 상승률이 일정하지 않거나 떨어진다.

 

21세기 자본이 선택하는 노동시장은 결국 인간의 노동력이 아니라는 점을 인식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누구든지 언제가 됐든 그 시점이 왔을 때 생존을 할 수 없는 상황으로 내몰릴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그 위기를 대처할 수 있는 준비를 해야 한다.

 

여러 다양한 노동시장의 상황과 인간의 노동이 IOT 산업에서 생존 할 수 있기위해 어떤 정책을 마련해야 하며, 인간의 노동은 어떤 준비를 해야 할지 노동자가 먼저 인지하지 못한다면 안타까운 희생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결국 미래의 노동시장은 육체적 노동의 하위급에서 관리 노동의 중상위급으로 업그레이드 될 수 밖에 없으며 이것은 노동자의 교육이 반드시 동반되어야 하는 시대로 갈 수 밖에 없다는 점을 자본가과 노동자 모두 공감하고 공유해야 할 부분이기도 하다.

 

기사의 부제로 쓰였던 기업과 노동자의 좁힐 수 없는 간극은 바로 자본시장의 변화와 소비시장의 변화를 기업과 노동자가 함께 읽어내야 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하며, 그 과정 속에서 자본은 노동자의 노동력을 업그레이드 할 수 있는 기회와 환경을 마련해야 하는 의무가 있고 노동자도 그 기회와 환경을 적극 활용하여 스스로의 노동력을 격상시켜야 할 의무가 있다는 걸 양쪽 모두 인식하고 인지했을 때 둘의 간극은 좁혀질 수 있는 희망을 기대할 수 있다.

 

 

p.s.

 

노동자(勞動者, 영어: worker, 문화어: 로동자)는 사용자(使用者)에게 노동력을 제공하고, 노동을 한 대가로 임금을 지급받는 사람이다.
대한민국에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의 이념 대결을 하는 반공 자본주의 체제라는 특수성으로 인하여 정부수립 이래 '열심히 노동하는 사람"을 의미하는 근로자(勤勞者)로 지칭한다.

 

고용되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피용자(被用者), 피고용인(被雇用人)이라고도 하며, 임금을 받고 노동한다는 의미에서 임금노동자 또는 임노동자라고도 한다.

 

노동자라는 단어의 본래적 어원이 불볕을 이고 힘 써서 움직이는 사람으로 노예노동을 연상하게하여
거의 대부분 서비스업종에서 종사하는 현대산업사회에서 부정적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다.

 

출처 :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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