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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페이지 p.26 / 백인세상에 등장한 블랙스완, 신인류, 영화 장고 - 분노의 추적자(2012) 中 -

by story-opener 2020. 12. 27.

 

 

첫 번째 블랙스완, 스티븐 (사무엘 L. 잭슨)

 

 

자본의 개념을 알고 자본시장의 시스템을 알고 있는 백인의 돈을 관리하는 흑인노예.

 

 

 

그러나 다른 흑인노예들과 달리 백인인 주인과 마주보며 동석 할 수 있는 제1의 하청업 관리인.

이런 부류의 흑인 노예들은 그다지 놀라운 현상도 아닐 것이다.

 

어쩌면 장고와 같은 새로운 성향의 블랙스완이 출현되기 전 나타나는 1세대 블랙스완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두 번째 블랙스완, 장고 (제이미 폭스)

 

 

무언가의 출현은 진화의 시작을 의미한다.

장고는 스티븐과 다른 성향의 블랙스완으로 나타난다.

 

그도 경제관념을 가지고 있고, 돌아가는 시스템을 이해하며, 심지어 상대방과 도박을 할정도의 여유와 배짱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스티븐과 다른 점은 그가 추구하는 삶이 백인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백인과 동등하게 살겠다는 신념에 있다는 점이다.

 

장고가 의미하는 건 새로운 종류의 인류 출현이라고 보면 어떨까.

 

 

 

전혀 듣도 보도 못한 인류의 출현.

자신의 눈을 의심해야만 하는 인류의 출현.

애당초 타고난 기질이 다른 인류의 출현.

 

거래의 본질(심리)를 파악하고 있는 하층민의 출현.

언어를 익힌 하층민의 출현.

자본을 이해하는 하층민의 출현.

 

앞으로 늘어나게 될 신인류의 출현.

 

 

 

캔디도 예상 했던 신인류의 등장.

 

"앞으로 너같은 놈이 더 늘어나겠지?"

 

 

 

그러니 늙은 스노우맨 스티븐은 두 눈이 튀어나올 밖에.

 

하지만 그들이 과연 신인류를 막을 수 있을까?

 

캔디의 말대로 흑인(또는 그에 상응하는 하층민)의 두개골 속 3개의 홈에는

노예근성이 자리잡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캔디의 그 말은 사실이기보다

그 말을 통해 그들이 노예에서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이라고 덧씌우기 위해 강조하는

프레임일 뿐이다.

 

그저 캔디같은 백인들의 바램일 뿐이다.

 


 

마지막 세 번째 블랙스완, 브룸힐다 (케리 워싱턴)

 

인종차별과 여성인권에 대한 시스템적 시선으로 볼 수도 있고,

자본주의 논리로 바라 볼 수도 있다.

 

분명 남북전쟁이 터지기 2년 전으로 배경을 잡은 이유도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자본을 확장시키기 위해선 더 많은 인류의 확장이 필요 했을 테니

블랙스완을 일으키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

 

남녀를 불문하고 더 많은 인구수가 필요했던 북부는

남부의 노예를 일반 서민으로 풀어놓지 않으면 산업화에 필요한 노동력을 값싸게 제공받지 못할 판이다.

 

그러니 산업화에 필요한 노동력으로 제공될 수 있는 인력이라면

그 대상의 기준에 인종의 문제나 남녀의 문제나 연령의 문제가 개입될 여지는 없던 시대였다.

 

 

그렇다고 누구나 신인류가 되는 건 아니다.

 

그 예로 브룸힐다를 떠올리 수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그녀 역시 신인류이기는 마찬가지였다고 본다.

단지, 태생이라고 보기 보다 장고의 영향을 받아 기질이 다소 변화 된 경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는 점이 안타깝기도 했다.

 

그녀는 자연스럽게 영어보다 한 단계 넘어서는 독일어를 구사하고 장고와 함께 낙인이 찍혀있으며

등짝에는 채찍질이 가해져 있다.

 

애당초 탈출을 하자고 꼬신건 장고였지만 그녀에게도 탈출의 갈망이 꿈틀대고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어쨌든, 신인류의 종족보존을 위해 여자가 필요했던 것으로 보여지는 건 어쩔 수 없는 현실의 시스템이라고 생각 된다.

아직까지는 혼돈의 시대에 살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겠지, 싶다.

 

여자가 생각하는 장고가 탄생되지 않는 한 어쩔 수 없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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